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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한민국, 다시 바로 세워야 합니다" - 늘푸른한국당 창당준비위원장 전도봉 前 해병대 사령관

윤준식 기자 승인 2016.10.06 11:56 의견 0

지난 9월 6일 최병국, 이재오 전의원을 공동 추진위원장으로 하는 늘푸른한국당이 창당발기인대회를 가졌다. 지난 4.13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하며 오랫동안 자리매김했던 양당체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제3지대 결집‘이라는 기치를 내건 늘푸른한국당이 창당작업에 들어가자 정치개혁과 개헌논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은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을 만났다.

 

 

현재 창당준비 상황은 어떤가

 

☞전도봉(이하 전): 9월 마지막 주에 경남을 향한다. 경남을 시작으로 부산, 경북, 전남 등 남쪽지방부터 돌며 창당 분위기를 조성하고 전국정당을 구성해 나가려 한다. 10월 중으로 각 도당을 조직하며 조직이 완료되는 대로 순서대로 창당해 나가고 내년 1월에 중앙당 창당을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5년 전부터 거제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공직과 관련없는 은거생활, 야인생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창당준비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어떤 계기에서 인가 혹시 이재오 전 의원과 과거부터 관계가 있었던 것인가

 

☞전: 이재오 전 의원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3주 전 쯤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 “이재오 전 의원입니다”라며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농사짓고 있는 사람이라 만나기 어려우니 할 얘기 있으면 전화로 하자”고 부드럽게 만남을 거절했지만, 거듭 “만나서 이야기하자, 거제도로 찾아가겠다”고 하여 내가 서울 가는 길에 만나자고 약속하며 이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재오 국가혁신 비전 듣고 창당준비위원장 수락

 

이재오 전 의원과는 창당발기인대회 하루 전날인 9월 5일에 만나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양반이 이 나라에 대한 조감도를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 단임제로는 나라 운영이 어려우니 중임제로 바꾸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로 단계를 줄이자, 국회의원도 200명으로 줄이자는 등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한 기본장치들이었다.

 

창당준비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다는 것은 어찌보면 정치에 입문한다는 건데, 단지2시간의 대화를 통해 결심하게 된 것인가

 

☞전: 무엇보다 ‘이 나라를 정의롭게 하겠다’, ‘공평한 사회를 만들겠다’, ‘행복한 국민을 만들겠다’는 세 가지 캐치프레이즈 하나하나가 평소의 내 생각과 똑같았고 매우 공감되었다. 그동안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잠들어 있던 나를 깨우는 메시지였다. 그래서 이 일은 누군가 반드시 해야한다는 생각에 2시간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서류 내놓으십시오”라며 결심을 밝히고 입당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제서야 그 다음 날이 창당발기인대회란 소릴 듣고 마음의 준비도 다 되지않은 채 참석하게 되었다.9월 6일 창당발기인대회에 가보니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수천 명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이재오 전의원은 물론, 최병국 대표를 비롯해 아무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만난 적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 표정, 악수하는 손 끝에게서 “이대론 안 되겠다.바꿔서 새로 해봐야겠다”는 강한 갈망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오늘까지 이른 것이다.

 

왜 지난 5년간 농사를 짓겠다 생각하고 낙향했던 것인가 그리고 5년간의 심경은

 

☞전: 5년 전 쯤 그간의 생활을 정리하고 아내와 미국 여행을 떠났다. 미국 여행 중 아리조나에 살고있다는 분이 자기도 해병대 출신이라며 대접하고 싶으니 자기 집에 와달라는 것이었다.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뜸 “사령관님, 나라가 이렇게 힘든데 높은 자리까지 하신 분이 사모님하고 놀러나 다니고 있을 때입니까”라고 하는 것이다.

 

"늘푸른한국당 창당준비위원장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413" height="550" /> "늘푸른한국당 창당준비위원장 전도봉 전 해병대 사령관" (사진: 윤준식 기자)

 

당시 천안함, 연평도, 제주해군기지 등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때였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제주도를 향했다. 사실은 제주도는 해병대의 모태다. 6.25 이전부터 해병대가 양병되어 나라를 위해 싸웠던 곳이다. 그래서 제주도에 해병대 예비역이 제일 많다. 이제 겨우 대양으로 갈 수 있는 이지스함을 만들었는데, 그 기지로 적합한 제주기지가 반대에 부딪히고 있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제주에 도착해보니 상황이 좋지 않았다. 찬성하는 쪽에 서있는 사람은 소수였고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는데 서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이대론 안 되겠다. 혁신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 잊어버리자. 내 혼자 힘으로 되는게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고 거제도로 내려가 5년 동안 농사지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농협, 수협선거와 기초의원 선거를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의 바닥을 보게 되었다. 순박한 시골이라 생각했지만 내 눈에는 다 부패했다.어느 한 쪽도 바르게 가는 게 없었다. 땅이나 열심히 파며 그걸로 마음을 달래고자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결국 현실에 참여하는 것이 결론이 되었다.

 

▶결국 그런 문제의식이 있었기에 창당에 동참하게 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늘푸른한국당에는 원내 의원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 소수정당으로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전: 정당을 구성하는데 꼭 국회의원이 필요한가정당활동을 통해 국민의 힘이 커지는 게 더 의미있다고 본다. 오히려 정치활동을 통해 국민들이 모이는 게 더 중요하다. 정권을 갖는 욕심보다 정치 자체를 바꾸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사전을 찾아보면 ‘정치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라 나오는데, 정치를 바꾼다는 것은 이 틀을 바꾼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나라를 새로 출발하게 하겠다고 하면 그게 정권 창출 아닌가

 

해병대 사령관 출신이시기에 국방과 관련한 질문을 드릴까 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여당에서는 전략핵배치와 자체 핵개발에 착수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드 배치를 비롯해 북핵억지를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전: 이미 북핵문제는 갈 데까지 가버렸다. 핵개발을 막고 안막고의 단계가 아니라 사용을 막아야하는 단계가 되어버렸다. 국제 정세를 고려한다면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막는 것은 동맹국에 의존하는 방법 밖에 없다. 만일 북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할 경우, 주변 나라의 눈치 안보고 한다 해도 앞으로 수년의 시간이 지나야 갖춰질 것이다. 이미 핵무장이 되어 10분 이내로 핵을 쓸 준비가 되어있는 북한과는 입장이 다른데 이 시간을 어떻게 기다릴 수 있는가 이에 따라 이 문제는 동맹국인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그런데 의존하는 동맹의 마음이 변하거나 늦게 반응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입장에선 속수무책이 아닌가 동맹을 통한 대응은 2차적 수단으로 보고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한 자체적인 1차적 수단을 생각해야 한다.

 

결사항전 의지 있어야 북핵도발에 대한 군사적 균형을 갖출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해병대가 지키고 있는 서해의 백령도, 연평도 같은 곳이 전략적 요충지가 될 것이다. 지금 평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백령도다. 그곳이 항공모함 여러 척의 효과를 내는 요새로 만든다면 어떻겠는가 북이 도발할 경우, 재래식 무기로도 평양을 타격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한다면 어떻겠는가 이런 결사항전의 의지가 있어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의지를 가진 군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부와 국민이 군을 신뢰하고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드문제도 그렇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본다.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 국민의 뜻과 의지를 생각해야 한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된 상황 속에서 국민은 망가진 나라를 원하지 않는다. 어차피 평화롭게 한 나라가 되는 것을 원한다. 이를 알고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한 원칙을 세운 다음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논란이 일기 시작한 모병제에 대한 입장도 궁금하다. 육군과 달리 해병대는 오랫동안 모병제를 해오지 않았나 모병제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전: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4대 의무 중 가장 중요한 게 나라 지키는 것이다. 이중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군인이다. 우리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지금 남북한은 전쟁을 60년간 중지한 상태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나라를 10대 강국이 되도록 키워왔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국방은 근간은 모병제가 아니고 징병제를 토대로 군별 특수성에 맞춰 모병의 권한이 주어졌던 것을 알아야 한다.지금 모병제 이야기는 인구가 줄면서 징병이 가능한 젊은이의 수가 줄어들어서 보다는‘돈 많은 사람은 군대를 안 가려한다’는 병역비리 문제나 ‘힘든 전투병과는 피하고 편한데 가려한다’는 군 인사문제에서 모병제 발상이 나오는 듯하여 걱정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괜찮은 엘리트들은 자기 갈 데로 가버리고 희망이 없는 청년들이 군을 형성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 군에게 나라를 맡긴다 이런 군대는 강군이 될 수 없고, 적에게 나라를 바치는 것이 된다.

 

모병제 논란 이전에 목숨바쳐 지킬 가치,국가에 대한 헌신을 존경했나 반성해야

 

이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고민해야 한다. 이 나라를 가치있게 생각하는 젊은이 그룹이 있느냐 아니냐를 생각해야 한다. 바꿔 말해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느냐다. 이에 대한 정치인들의 반성이 있어야 한다.연평도 포격도발이 있고 나서 청년들 사이에서 해병대 지원율이 급상승했다. 미국에 유학갔던 청년도 귀국해서 연평도에 보내달라고 하기까지 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우수하다. 6.25 때도 낙동강 방어선 지킨 것이 누구인가 모두 학도병이다. 순수한 애국심이 있는 젊은이들이었다.모병제냐 징병제냐를 떠나 나라사랑하는 정신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우리가 얼마나 이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앞서 돌아오는 주부터 지방을 돌며 창당작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앞으로 창당준비위원장으로서 그동안 익숙하지 않은 바쁜 정치일정을 소화해야할 텐데 각오를 밝힌다면

 

☞전: 해병대 소위 시절, 베트남 파병부대인 청룡부대에 소대장이 모자라 파병을 자원했다. 소대원을 이끌고 작전에 투입될 때마다 죽기를 각오하고 선두에 섰다. 원래 소대장이 선두에 서는 것은 올바른 전투방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대원 한 사람이라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아 적진 앞에서는 내가 첨병이 되곤 했다. 그 덕분에 소대원을 잃지않고 소대장 시절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때 자신이 죽기를 각오하고 헌신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뼈 속 깊이 깨달아 알게 되었다.대한민국의 희망을 위해 국민의 힘이 모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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