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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다시 시작된다” (상)

윤준식 기자 승인 2013.06.29 19:16 의견 0

[윤기자의 뷰-人(5)] <더 플레이_Stage1.떡볶이>로 돌아온,

극단 <하늘연어> 조재국 대표 인터뷰 (상)

 

 


 

11년 만에 찾아온 창작뮤지컬 <더 플레이_Stage1.떡볶이>. <더 플레이>는 당시 라이센스 뮤지컬의 범람 속에서 한국 공연문화의 자존심을 드러낸 작품이었다.극단 <하늘연어>의 조재국 대표는 11년 전 <더 플레이>에 출연했던 배우였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연출자로서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리메이크하여 무대에 올렸다. 공연이 끝난 늦은 시각, 시사미디어투데이는 대학로의 카페에서 조재국 대표를 만났다. 그는 시사미디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11년 전의 <더 플레이>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소극장 뮤지컬로 다시 돌아온 <더 플레이_Stage1.떡볶이>가 공연되기까지의 과정을 말했다.

 

▲ 11년만에 돌아온 창작뮤지컬 <더플레이>가 돌아왔다.극단 <하늘연어> 조재국 대표 인터뷰 ⓒ 시사미디어투데이

 

윤준식 기자(이하 윤기자): 원래 배우이셨는데, 연출자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조재국 대표(이하 조대표): 제가 서울예전을 나왔거든요. 원래 대학다닐 때, 소극장에 창작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그런데 배우하면서 더 플레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창작도 가능하구나.. (웃음) 그 과정 중에 생각한 게 제작을 하면 자기가 원하는 걸 만들 수 있겠다. 나의 생각을 말해보자. 직접 제작을 하고 연출도 하면서 의미를 전하고자 하다보니 역할이 배우에서 연출로 바뀐 것이죠.

 

윤기자: 극단 <하늘연어>를 시작하시면서 어떤 작품들을 거쳐 <더 플레이>를 하시게 된 것인가요

 

조대표: 하늘연어를 창립하여 처음 <엄마의 약속>을 했어요. MBC 휴먼다큐멘터리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었죠. <장기려, 그 사람>도 제작해서 작년에 공연했어요. 그러고보니 <햇님달님>같은 가족공연, 어린이 공연도 몇 편 해왔네요. <더 플레이>는 계속 구상하다가 올 초에 ‘리틀스토리’라는 프로젝트로 작은 공연들을 기획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윤기자: <더 플레이>는 조재국 대표님이 11년 전에 배우로 참여했던 작품이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조대표: <더 플레이>는 당시 창작공연으로는 컸죠. 8회 뮤지컬 대상에서 5개부문 수상했으니 나름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코엑스로 무대를 옮겨가면서 실패했던 작품이었어요. 자유극장, 토월극장까지는 좋았는데 코엑스 오디토리엄에서 정식공연장이 아닌 국제회의장을 극장화했던게 무리였던거죠. 저희는 힘들었는데 다음 작품부터는 좋았어요. 거기에 ‘지킬’을 갖고 들어오면서 극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된거죠.

 

윤기자: 그럼 11년 전의 <더 플레이>는 왜 정식 공연장이 아닌 코엑스로 간 것인가요

 

조대표: 그때 시기적으로 코엑스에서 공연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보통 이런 공연은 극장을 1년 전에 잡아야 하는데, 제작비를 투자받으며 투자일정에 맞춰 공연장을 급하게 찾다보니 무리수를 뒀던 것 같아요. 안정적인 공연을 하려면 투자와 더불어 극장을 장기간 운영하여 전용관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당시에 마땅히 뮤지컬을 할 공간이 없었어요.

 

▲창작콘텐츠로 소극장 뮤지컬로 시작, 대형 뮤지컬로 성장했던 <더 플레이> ⓒ리틀스토리 제공

 

윤기자: <더 플레이> 이전에 다른 이름의 작품으로 공연했다고 들었는데, 그 때는 소극장 뮤지컬이었을 것 같은데요

 

조대표: <더 플레이>는 원래 <오마이갓스>라는 작품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때는 완전히 소극장에서 했죠. ‘알과핵 소극장’에서 시작했어요. <오마이갓스> 이후에 <갓스>로 작품을 할 때도 ‘대학로극장’이라는 소극장에서 했거든요. 그런데 작품을 보강하며 <더 플레이>로 가면서 ‘자유소극장’, ‘토월극장’으로 옮겨가게 된 거예요. ‘토월’이 끝나고 뮤지컬 대상 받으면서 투자가 들어오며 코엑스로 간 거죠.

 

윤기자: 그럼 당시 국내 창작뮤지컬 풍토는 어땠나요

 

조대표: 당시에는 창작뮤지컬을 관단체에서나 했어요. (주: 여기서 ‘관단체’란 표현은 정부기관이나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극단을 의미함) 일반적인 제작자들은 창작뮤지컬을 PMC(주: PMC대학로자유극장) 정도에서나 하는 수준이었죠.

 

윤기자: 11년 전에도 대작들과 대결하는 구도였죠

 

조대표: 그 때도 <맘마미아>, <시카고>, <렌트>, <카르멘>, <겜블러>, <사운드오브뮤직>, <팬텀>(주: 펜텀오브디오페라), <레미제라블>이랑 붙었죠.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지금도 대학로 시장상황이 쉽지가 않거든요. 작년에 대학로 유료객석 점유율이 28% 정도였어요. 평균. (잠시 숨을 고른 후 이어짐) 대형 뮤지컬들에 자본이 들어가다보니까 부익부 빈익빈이 커지는거 같아요. 그러니까 소극장 공연도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것이죠. 큰 극장 가는 건 큰 극장대로 볼거리가 있고 완성도가 있는거 거든요.그런데 오히려 11년 전의 <더 플레이>는 창작극이라는 어필이 되어서 투자가 들어왔죠. 좀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국교회의 도움이 컸어요. 내용이 기독교적인 면이 많아서 ‘문화선교’라는 이름으로 도와주셨어요.

 

윤기자: 작품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에 교계 외의 반응이 있었을 텐데요

 

조대표: 유준상 팬클럽이 많이 도와줬어요. (너털 웃음) 그때 유준상은 뮤지컬이 처음이었는데 팬이 많았어요. 그 밖에 박건형이 <더 플레이>로 데뷔했죠. 지금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임춘길도 그랬어요. 당시 잠재력있는 배우들이 함께했어요. 지금 볼 때 뮤지컬 2세대 주연들이 함께한 셈이죠. 그때는 팀웍이 굉장히 좋았어요. 서로 신이 나서 작업을 했으니까. 그게 힘이 되어 관객을 끌어모았던 것 같아요.

 

▲ 관객과 무대에서 호흡하는 것이야 말로 공연예술에 있어 중요하다 ⓒ 시사미디어투데이

 

윤기자: 이번에 소극장뮤지컬로 리메이크를 하게 된 사연도 그때와 연관있을 것 같습니다.

 

조대표: 맞아요. 코엑스로 가며 질적으로 양적으로 커졌는데 알맹이가 빠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전에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관객과 가깝게 만나면서 극의 내용을 전달했었는데, 대형화되고 자본이 들어오며 재미와 볼거리 위주로 포장하다 보니까 작품이 실패를 한 거죠.

 

 

== (하)편으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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