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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분단이후세대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연극 ‘강택구’

윤준식 기자 승인 2017.05.03 15:51 의견 0
소련의 붕괴로 미소 냉전체제가 종식된 지 20년이 지났다. 강대국의 핵우산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양분했던 조용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세계는 인종, 민족, 종교 등의 문제로 복잡한 분쟁상태에 접어들었고 전쟁의 위협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첨예한 군사력이 대치하고 있는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떤가

 

고르바초프의 등장으로 페레스트로이카가 이루어지고 중국이 개혁개방에 접어들며 잠시나마 북한체제도 변화할 것으로 기대했던 때가 있었다. 남북의 교류가 더욱 빈번해지며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듯했다. 정주영 회장이 소를 몰고 북으로 올라가고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남북한 정상이 서로 만나고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고, 개성공단이 조성되며 남북이 육로로 왕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족의 숙원이 해결되는 듯 한 꿈은 잠시 잠깐이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연평해전 등 남북한의 군사적 갈등은 다시 시작되었다. 특히 남북한 간의 평화무드를 주도했던 인물들이 세상을 뜨며 갈등조정자들이 사라져버렸다. 이 가운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은 남북간의 군사적 문제가 북미간의 대결구도로 확대되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남북한간의 문제는 민족적 접근과 ‘국가 대 국가’의 외교적 접근이라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 통일논의를 시작한다해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이런 복잡한 상황과 갈등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우리는 이산가족 문제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해야 한다.

 

연극 <p class=(극단 애플씨어터 제공)" width="550" height="413" /> 연극 <강택구> (극단 애플씨어터 제공)

 

오늘 이야기하는 연극 ‘강택구’는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90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무겁지 않은 이야기로 풀어낸다.

 

암전 속에 극이 시작된다. 거친 숨소리와 코고는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3명의 주인공이 한 사람씩 등장한다.여기는 모스크바 근교의 어느 지하실. 갑자기 납치되어 잡혀온 러시아 유학생 강두만과 사회부 기자 최용갑. 깨어난 이들은 자신들의 행적을 되새기며 자신들이 잡혀온 이유를 떠올려본다.

 

특종을 쫓는 최용갑 기자는 유학생 강두만의 아버지가 북한을 탈출하며 북에 두고 온 이복형 강택구가 러시아에서 벌목공으로 일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강택구와 강두만의 극적 상봉을 연출해 기사화하고자 한 것이다. 강두만을 설득하던 가운데 두 사람은 괴한에게 납치되어 이 지하실에 감금되었던 것이다.

 

한편, 그들이 잡혀온 공간에는 다른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함경도 회령 출신의 북한 벌목공이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탈출 벌목공 수색조들이 세 사람을 이곳에 잡아 가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를 알아가던 이들.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나누고 남한 가요를 부르며 친해지는데, 그 과정 속에 벌목공의 신분이 드러나고 그가 강두만의 이복형 강택구임이 밝혀진다.함께 남으로 귀순하자는 최용갑 기자와 강두만. 그러나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해 여기에 남겠다고 하는 강택구를 남기고 두 사람은 탈출한다.

 

연극 <p class=(극단 애플씨어터 제공)" width="550" height="413" /> 연극 <강택구> (극단 애플씨어터 제공)

 

다소 신파조의 스토리이지만, 이 이야기는 다분한 개연성을 갖고 있다.제3국을 경유해 남한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이 많은 상황을 떠올려보면 점에서는 남북한의 주민이 제3국에서 만난다는 것이 첩보영화에나 등장할만한 설정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이루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장사를 하기 위해 육로로 국경을 넘나드는 북한 주민들도 있고, 외화벌이를 위해 파견된 인력도 있다.

 

연극 ‘강택구’는 외화벌이를 위해 북한이 파견한 시베리아 벌목공의 귀순을 소재로 삼았다.신문기사를 뒤져보면 1991년 10월 8일 이정의 씨를 최초의 귀순 벌목공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 작품이 최초 제작된 때가 1995년으로 제작발표 또한 모스크바에서 진행했다. 르포르타쥬로 풀어낼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리려 한 참신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연극 ‘강택구’는 지금까지 다루었던 분단 소재의 작품들과는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통 전쟁과 분단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가족의 이별, 서로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갈등 상황으로 축소해 보여줌으로써 분단의 비극을 이야기하곤 했다. 여기에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조의 이산가족 상봉문제로 끌고 가는 식이었다.

 

그러나 연극 ‘강택구’는 분단 이후의 세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 대가족 시대의 종말, 남북한 간 경제적 격차, 통일 비용의 문제점 등 분단 세대들과는 또 다른 고민과 갈등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의 생각과 논리는 분단세대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는 가족과 민족이라는 동질감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 극에서는 함께 노래를 부르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아직도 공유되고 있는 우리만의 정서를 보여준다. 또한 깊은 내면 속에 자리 잡은 상처와 한을 통해 아직도 남북한 간에 ‘형제애’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시간을 역산해보면 벌목공의 귀순 이후 26년이 지났고, 이 작품의 초연으로부터도 20년의 시간이 지났다. 초연에선 ‘6.25전쟁 통에 월남한 아버지가 두고 온 배다른 형’이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시베리아 벌목공 출신으로 탈북한 아버지가 두고 온 배다른 형’으로 설정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의 미묘한 차이가 작품 구석구석에서 충돌해 몰입도를 저해하는 요소이긴 했지만 ‘강택구’를 연기한 한덕호 배우의 호연이 극에 집중하게 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이어 美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무력 시위가 연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최근의 상황이다. 북한이 또 한 번의 핵실험을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도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대한민국은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연극 ‘강택구’가 등장한 지 2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남북한간의 상황은 시간이 멈춘 듯 얼어붙어 있다. 극중 ‘강택구’도 여전히 남으로 향하지도 못하고 북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20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연극 ‘강택구’는 5월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씨어터 문>에서 공연된다.

 

강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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