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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미용에 신체건강을 더하다!” 한국전통피부관리 전문가 조군자 박사(1편)

김혜령 기자 승인 2017.07.03 23:31 의견 0

유주관힐링요법으로도 불리는 석션테라피로 국내 최초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조군자 박사. 박사학위 취득 후에도 후진양성 뿐 아니라 운영의 어려움을 겪는 미용샵을 찾아다니며 유주관힐링요법을 응용한 실무기술의 전도사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현장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연구감각도 떨어진다는 조군자 박사. 그녀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전한다.(편집자 주)


¶ 화장품 판매원이 되며 문 두드린 미용업계

조군자 박사가 미용업계에 입문한 것은 벌써 30여 년 전. 당시 주부사원을 모집하던 K화장품 업체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게 되며 미용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기존의 방문판매 방식은 메이크업을 담당하던 미용사원과 판매사원이 한 조가 되어 행해졌다. 고객의 집을 찾아 미용사원이 피부 마사지와 메이크업을 해주면, 판매사원이 이 기회를 활용해 화장품을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K사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여성고객에게 접근하게 되었다. 미용사원과 동행하지 않는 대신 판매사원이 미용사원의 업무를 일부 겸하고 고객의 자택에서보다는 회사로 찾아오게 하는 전략이었다. 멋진 베드에 누워 전문가들로부터 관리를 받게함으로써 고객으로 하여금 더욱 만족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갓 30대가 된 주부 판매사원이었던 조군자도 미용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회사로부터 교육받게 되었다. 마침 프랑스에서 미용을 공부하고 왔다는 강사가 한 마디가 조군자 박사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산업이 발전하게 되면 서비스 산업도 발전하게 됩니다. 서비스 산업사회는 지식이 평준화되고 외모를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아지게 됩니다. 단순히 머리손질을 하는 수준의 미용을 넘어서 피부관리, 몸매관리, 메이크업을 포괄한 변화가 오게 됩니다. 이를 통해 여성들도 자신을 더 아름답게 가꾸면서 적극적인 사회진출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조군자 박사 조군자 박사

¶ 배움의 시작; 토탈미용을 향해

이미 여러 차례의 교육과 영업경험으로 화장품을 통해 얼굴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왔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단순히 화장품에서만 오는 것은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화장품과 화장술 외에도 음식, 운동 등 생활 속의 다양한 것들이 어우러져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일하게 된 분야가 가까운 미래사회에서 각광받는 분야가 될 것이라니 미용이 사람의 인생과 마음까지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조군자는 초기에 헤어미용을 배우기 위해 학원을 등록하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는 조금 늦은 듯한 3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열정을 갖고 전 과정을 하나하나 공부하기 시작했다. 헤어미용을 시작으로 피부미용, 메이크업까지 2년에 걸쳐 광범위하게 미용 실무를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미 학원을 다니겠다고 결심했던 때에 작은 가게를 가지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미용사업이 가능한 뷰티샵으로 확장시키고 싶었다. 경영자의 마음을 품게 되니 배움도 자신의 사업이라는 생각에 결석, 지각 한번 없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2년이라는 오랜 교육을 마친 후, 바로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전국의 미용샵 100군데를 견학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 과정에서 가게의 분위기, 시설, 느낌 등 사업성공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결과 그녀의 뷰티샵은 헤어미용, 피부미용에 각종 테라피가 곁들여진 건강관리가 합쳐지며 토탈미용을 추구하게 되었다.

¶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 준 유럽 연수

작은 샵이었지만, 각종 테라피를 적극적으로 해 나가다보니 아로마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와 가까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윽고 높은 실적을 올린 업체들에게 주는 20일 가량 해외연수의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조군자 박사가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한국의 화장품이 유명해졌만, 20여년 전 당시에는 뷰티샵과 같은 곳에서 필요로하는 전문 화장품들은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그 주 수입처는 유럽이었다. 따라서 유럽연수는 견문을 넓혀줄 좋은 계기였다. 20일간 프랑스, 독일, 이태리 3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유럽의 아로마 마사지를 체험한 것이 향후 조 박사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당시 한국은 지압형 마사지가 대부분이었지만 당시 유럽은 60여 가지의 아로마를 개인의 체질에 맞게 브랜딩한 후 몸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마사지 기술을 추구하고 있었다.

당시 마사지 교육을 눈 앞에 둔 상태에서 강사는 한 사람이 교육을 위한 모델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모델이 되면 유럽의 마사지 권위자로부터 실제 마사지를 체험해볼 수 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옷을 벗어야하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 달리 조군자 박사는 전문가의 손길을 직접 체험해보고 그것을 자신의 샵을 찾아오는 고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다. ‘나는 프로다’를 되뇌이며 모델을 자청했다. 그 덕택에 풀코스케어를 받게 되었는데, 아로마 마사지가 진행된지 얼마 안되어 숙면에 빠지게 되었다. 몸이 편안해지고 다른 사람이 된 듯한 새로운 에너지를 받았다.

모델로 나서는 대신 영상기록을 남기던 주최 측에 요청해 자신이 모델로 등장하는 장면들의 비디오 테이프를 건네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비디오 테이프를 반복해 보며 몸으로 느꼈던 감각을 토대로 마사지 기술을 반복 습득한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쌓아온 지식자산을 토대로 사업을 잘 이끌고 나갔어요. 이 분야는 끊임없이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하고, 기술을 행해야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어요.”

(2편에서 계속)

[취재: 윤준식 기자 / 정리: 김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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