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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연극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 - "새로운 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김혜령 기자 승인 2017.09.04 02:04 의견 0
휴식을 위해 휴양지를 찾은 구로프와 안나. 안나가 매일 개를 데리고 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녀를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라고 부른다. 아내와 남편이 있는 구로프와 안나이지만 둘은 내연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두 남녀는 자신들이 원하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들에게 진실된 삶은 과연 무엇일까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3일까지 ‘공연창작소 공간’이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올린 작품 ‘개를 데리고 사는 여자’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박경식 연출은 움직임, 오브제, 라이브 연주 등 다양한 방법을 무대 위에 동원해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연극을 만들어냈다.

 

움직임, 오브제, 라이브 연주 등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무대가 돋보인다. (공연창작소 공간 제공) 움직임, 오브제, 라이브 연주 등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무대가 돋보인다. (공연창작소 공간 제공)

 

구로프라는 40대 남성과 안나라는 20대 여성의 사랑이 이야기의 중심 스토리를 이루지만, 이 극에서 해설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해설자는 때로는 극중 등장인물로, 때로는 해설자로 독립된 역할을 소화하며 극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아이가 있고 아내와 결혼한 지 한참 된 40대 남성 구로프와 지겨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바닷가로 휴양 온 여인 안나의 사랑이야기로 정리되지만 불륜이야기다.

 

다만 구로프는 안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은행원이면서 무뚝뚝한 아버지, 여자를 “저급한 인종”으로 정의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여인들과 바람을 피우는 남자였다. 그러나 안나를 만나고 난 뒤의 그는 갓 사랑을 알기 시작한 수줍고 청초한 소년으로 돌아간다. 우스갯소리를 나누고 산책도하고 수줍게 사랑을 알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서로에게 가정이 있었나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

 

휴양지를 찾은 구로프와 안나. 아내와 남편이 있지만 불륜에 빠지는 두 남녀. <p class=(공연창작소 공간 제공)" width="550" height="367" /> 휴양지를 찾은 구로프와 안나. 아내와 남편이 있지만 불륜에 빠지는 두 남녀. (공연창작소 공간 제공)

 

안나 역시 젊은 나이에 워커홀릭인 남편과 결혼해 무료함을 느끼던 중,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이 바닷가로 오게 되었다. 상류층의 생활을 하며 정숙하고 고상한 여인으로 살아가던 그녀가 구로프를 만나 자신의 규율을 어기면서도 은밀한 밀회를 즐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남자는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의 곁으로 돌아가며 결말이 난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된 사랑이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찾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 남들의 눈을 속이면서 만남을 이어가다보면 일상의 반복과 지겨움을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이전과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구로프에게 개를 데리고 다니며 매일 같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 여자는 처음의 달콤함을 선물 했을 뿐, 결국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을 뿐이다.

 

해설자는 극의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던진다. “이 책의 인물이 만남을 이어갔는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진정 아름다움이 뭔지 느꼈고, 이제 그들이 진실되게 살아가길 바란다는 것. 그 뿐, 그이상은 알바 아닙니다.”

 

해설자를 통해 이 극은 일상에서의 가치를 알아가는 일은 새롭고 멋진 삶을 시작하는 것 보다 아주 복잡하고 어렵지만 아주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커튼콜 중. 배우 이찬후, 장영주, 정승민, 황지영, 강다형 <p class=(사진: 김혜령 기자)" width="550" height="309" /> 커튼콜 중. 배우 이찬후, 장영주, 정승민, 황지영, 강다형 (사진: 김혜령 기자)

 

인간은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한다. 새 옷, 새로운 사람, 새 집처럼 새로운 물건을 손에 쥐고 아이처럼 기뻐한다. 그러나 그 역시 잠시 잠깐에 머무른다. 새로운 것은 다시 옛 것이 되며 그것들에 지치고 지겨워지면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연극 ‘개를 데리고 사는 여자’는 이렇게 새로움을 찾아 떠도는 나그네들에게 “새로운 것 보다 더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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