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공연리뷰] "이 시대의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 - 극단 다빈나오 소리극 '옥이'

김혜령 기자 승인 2017.09.09 10:41 의견 0
노약자와 장애인도 함께 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공연, 극단 다빈나오의 소리극 ‘옥이’가 3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공연된다.

 

다빈나오는 ‘다 같이 빈 마음으로 나오시오’라는 의미를 가진 공연단체로 2005년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진 극단으로 지금까지 장애인들을 문화소비자로 보았던 시각과 달리 장애인들이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가 되도록 활동해 왔다. 이번 공연에서도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역할로 무대에 등장해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관객들도 뜨거운 환호로 호응했다.

 

돌아가신 엄마가 남겨준 녹음 속 바리데기 이야기를 점자책으로 만들고 있는 주인공 '옥이' <p class=(극단 다빈나오 제공))" width="550" height="413" /> 돌아가신 엄마가 남겨준 녹음 속 바리데기 이야기를 점자책으로 만들고 있는 주인공 '옥이' (극단 다빈나오 제공))

 

소리극 ‘옥이’는 전통설화 ‘바리데기’ 이야기를 차용한다. 은방울 커피숍이라는 공간과 주인공 옥이의 꿈 속 공간을 연결해 바리데기를 점자책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옥이가 자신의 꿈에서 저승으로가 엄마를 구할 약수를 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엄마 없는 세상을 사는 것이 두려운 옥이는 ‘바리데기’를 점자책으로 다 옮기면 엄마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꿈 속에서 옥이는 은방울 커피숍 사장 은아에게 선물 받은 종이배로 저승을 다니며 ‘바리데기’와 같은 행동을 해나간다. 결국 엄마와 저승에서 조우하지만, 엄마로부터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받고 꿈에서 깨어난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은아와 옥이. 커피숍이라는 공간만이 그들이 깃들 안식처다. <p class=(극단 다빈나오 제공) " width="550" height="413" />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은아와 옥이. 커피숍이라는 공간만이 그들이 깃들 안식처다. (극단 다빈나오 제공)

 

소리극 ‘옥이’의 부제는 ‘은방울 커피숍의 바리데기들’이다. 전통설화 속에서 바리데기는 7째 태어난 공주로 아들을 바랐던 왕으로부터 버려지는 인물이다. 누군가의 바람이 아닌 인물이 태어났다고 해서 그 생명이 과연 버려져야 하는 것일까

 

은방울 커피숍을 운영하는 ‘은아’는 성전환 수술을 한 남성이며 주인공 ‘옥이’는 어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다. 세상에서 소외된 인물로 등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세상이 바라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외받고 버려진 이 시대의 바리데기들로 극 속에서는 같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550"]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극이기에 가능한 다양성이 현실을 재조명해준다. <p class=(사진: 김혜령 기자)" width="550" height="309" />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극이기에 더 많은 다양성을 담는다.이 전통설화 바리데기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 현실을 새롭게 재조명하고 있다. (사진: 김혜령 기자)

 

극의 내용을 떠나 소리극 ‘옥이’는 극중 캐릭터와 배우의 조합에서 지금까지 보았던 다른 연극들과의 차이가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연극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성을 기대하게 한다.

 

실제로 시작장애인인 김혜영 배우가 ‘옥이’로 등장해 자신와 맞는 색깔의 캐릭터를 입고 관객들에게 설득력있는 연기를 선보인다.극 중 키가 9척 장신으로 표현되는 ‘저승’의 역할은 아이러니하게도 저신장장애를 가진 신강수 배우가 맡았다. 배우와 배역의 역설은 신강수 배우가 보여주는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증폭되며 무대를 장악했고, 관객들도 박장대소하며 극 속 배우들과 공감했다.

 

저신장장애를 가진 배우가 표현하는 장신의 ‘저승’. 다양성에서 오는 역설이 더 큰 상상력을 가능케 한다. <p class=(극단 다빈나오 제공)" width="413" height="550" /> 저신장장애를 가진 배우가 표현하는 장신의 ‘저승’. 다양성에서 오는 역설이 더 큰 상상력을 가능케 한다. (극단 다빈나오 제공)

 

배리어프리를 선언한 만큼 극의 곳곳에 장애인과 노약자들을 위한 배려를 장치도 돋보인다.신파극의 변사처럼 무대 한쪽 구석에 해설자가 위치해 장면장면을 육성으로 설명한다. 또 퓨전국악 라이브 연주와 소리(창)를 삽입해 전통설화 바리데기의 신비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해설자의 개입 또한 동시통역 중인 해외뉴스를 대할 때처럼 노이즈로 들리지 않는다. 해설도 극에 포함된 한 요소로 연출되어 배우들과 해설자의 호흡을 보는 데서도 깨알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극의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장면이다.깨진 유리조각에 무지개가 비치고, 그 무지개를 설명해 달라는 옥이의 부탁에 은아는 옥이가 깨진 유리조각을 조심히 만지게 하며 둘은 서로의 손을 마주한다.오랫동안 타인의 왜곡된 시선 때문에 타인과 대화를 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서로의 따스한 손길만으로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대화를 시작하며 오랜 상처를 치유 받는다.

 

배리어프리의 묘미를 제공한 퓨전국악그룹 '사이너머'와 민소윤 음악감독 <p class=(극단 다빈나오 제공)" width="550" height="413" /> 배리어프리의 묘미를 제공한 퓨전국악그룹 '사이너머'와 민소윤 음악감독 (극단 다빈나오 제공)

 

소리극 ‘옥이’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정면비판하지 않는 대신 바리데기 이야기를 통해 우회적으로 일깨울 뿐이다. 바리데기가 괜히 태어난 생명이 아니었던 것처럼, 소외된 이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며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기를 바랄 뿐이다. 관심과 대화의 총량보다 경계를 허무는 것의 중요함, 소통의 중요함을 말해준다.문화예술의 영역에 배리어를 설정한 것은 장애인일까, 비장애인까 배리어프리 공연을 관람하고 나오며 든 생각이다.
[관련기사]

♠ [인터뷰] 극단 ‘다빈나오’ 김지원 대표“배리어프리! 장애인과 비장애인 누구나 막힘없는 세상을 꿈꾸며…”http://www.sisa-n.com/17150cat=1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