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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셰익스피어식 블랙코미디의 진수 -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

김혜령 기자 승인 2017.12.11 17:33 의견 0
셰익스피어극 ‘준대로 받은대로’. 원제인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를 새롭게 번역한 제목이다. 성경의 내용에서 모티브를 가진 제목이라 그간 ‘법에는 법으로’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에는 법, 권력, 자비, 성(性) 등 작품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들을 드러내기 위해 ‘준 대로 받은 대로’라고 했다.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 <p class=(사진출처 : 국립극단)" width="550" height="367" />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 (사진출처 : 국립극단)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는 셰익스피어 식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다. 블랙코미디란 비극적 소재를 희극화한 장르인데 이번 극에서는 불법을 행하고 성상납을 하는 등 어두운 뒷거래가 오가는 가운데 등장인물의 독특한 성격과 촌철살인의 대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오래된 법을 지키지 않아 도시가 부패하는 모습을 본 공작은 앤젤로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권한을 다 위임하고 도시를 떠난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부로 변장해 도시에 머물며 앤젤로가 자기 대신 마을을 잘 다스리는지 확인하려 한다.

 

앤젤로가 잘 통치하는지 신부로 변장해 마을을 돌아보려는 공작의 모습 <p class=(사진출처 : 국립극단)" width="550" height="367" /> 앤젤로가 잘 통치하는지 신부로 변장해 마을을 돌아보려는 공작의 모습 (사진출처 : 국립극단)

 

금욕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앤젤로는 엄격한 법을 적용해 혼인 전 관계를 맺은 클로디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견습수녀인 이사벨라는 오빠인 클로디오를 살리기 위해 앤젤로를 찾아가 사형을 면해달라 간청한다. 앤젤로는 그녀에게 반해 자신에게 순결을 주면 청을 들어주겠다며 거래를 요구한다. 이사벨라가 고민해 빠져 있을 때, 신부로 변장한 공작이 나타나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일을 잘 해결한다는 결말이다.

 

연극의 결말은 의아함을 남긴다. 공작은 다른 인물들에게는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만 자신은 이사벨라에게 청혼을 하며 극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시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당시의 시각에선 해피엔딩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지금의 시대에서는 이사벨라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혼이기 때문이다. 이사벨라가 공작에게 청혼을 받고 나서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연극이 막을 내린다. 물론 공작의 청혼에 좋다고 말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알 수 없지만, 침묵을 통해 거절의 ‘저항’을 나타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빠인 클로디오를 살리기 위해 이사벨라에게 순결을 바치라고 이야기하는 앤젤로. <p class=(사진출처 : 국립극단)" width="550" height="367" /> 오빠인 클로디오를 살리기 위해 이사벨라에게 순결을 바치라고 이야기하는 앤젤로. (사진출처 : 국립극단)

 

창조된 입체적 캐릭터들의 성격을 보면 “역시 셰익스피어”라는 찬사를 금치 않을 수 없다. 이들을 통해 비춰지는 세상에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그나마 절대선에 가깝게 그려지는 인물인 견습수녀 이사벨라도 인간적인 연약함을 갖고 있고, 그런 이사벨라에게 성상납을 요구한 앤젤로도 절대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다스리던 마을을 버리고 타인에게 위임하는 백작의 무책임함에 기가 막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년이 지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극은 서민들을 향해 권력의 칼을 휘두르며 착취를 일삼는 지배층,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는 지배층을 고발하고 있다. 우리시대 위정자들을 따끔하게 꾸짖는 셰익스피어의 목소리가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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