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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10대들의 성 정체성을 다루다 -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

김혜령 기자 승인 2018.01.08 22:32 의견 0
한국 문화에서 이제 퀴어를 소재로 한 연극이나 영화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년 여름 공연되었으며 오랫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쓰릴 미’, 현재 한참 공연되고 있는 연극 ‘거미여인과의 키스’. 그리고 2월 25일까지 백암아트홀에서 공연되는 10대들의 성 정체성을 다룬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이다. ‘베어 더 뮤지컬’은 중극장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두 번의 공연을 마치고 소극장 무대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베어 더 뮤지컬’은 성 세실리아 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청소년들의 사랑,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의 이야기들을 풀어낸 뮤지컬이다. 뮤지컬의 소재는 청소년기의 성 정체성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러나 두 인물의 이야기 뿐 아니라 그 안에 상황을 이해하려 하는 10대들의 내면 심리도 함께 담아내 관극을 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느끼게 한다.

 

졸업연극 무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제이슨과 그런 제이슨의 죽음에 슬퍼하는 피터 <p class=(쇼플레이 제공)" width="550" height="367" /> 졸업연극 무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제이슨과 그런 제이슨의 죽음에 슬퍼하는 피터 (쇼플레이 제공)

 

뮤지컬의 배경인 카톨릭계 고등학교인 성 세실리아 학교는 학생들에게 보수적인 사고를 제약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두 주인공 피터와 제이슨의 관계는 보수적 집단에서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행위이다. 바로 두 남자 주인공이 사랑을 나누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모든 것에 능수능란한 킹카 제이슨과 평범한 한 소년 피터의 관계에 제이슨을 사랑한 여자 아이비, 그리고 아이비를 좋아하는 만년 2등 맷, 그런 맷을 좋아하는 제이슨의 쌍둥이 동생 나디아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청소년기에 빚어질 수 있는 흔한 사랑이야기와 좀 더 무거운 문제인 성 정체성의 문제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교장신부님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건네는 피터. "우리는 단지 사랑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p class=(쇼플레이 제공)" width="367" height="550" /> 교장신부님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건네는 피터. "우리는 단지 사랑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쇼플레이 제공)

 

공연의 소재와는 별개로 뮤지컬의 음악들은 다양한 장르를 담아내며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거기에 배우들의 매력적인 보컬은 관객들에게 때로는 웃음어린 표정을, 후반부에는 눈물을 훔치게 한다. 총 175분의 공연 시간을 자랑하지만, 한 장면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집중력 있는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화려한 조명, 그리고 매력적인 뮤지컬 넘버들이 어우러져 한편의 완성도 높은 극을 만들어 낸 탓일 것이다.

 

극 중 피터와 제이슨은 두 사람만의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사람에게 면담을 요청한다. 피터는 교사인 샨텔 수녀에게, 그리고 제이슨은 교장 신부님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들은 답은 정 반대다.

 

자신의 괴로움을 샨텔수녀님과 상담하는 피터 <p class=(쇼플레이 제공)" width="367" height="550" /> 자신의 괴로움을 샨텔수녀님과 상담하는 피터 (쇼플레이 제공)

 

샨텔 수녀는 피터에게 “넌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라고 말하지만, 교장 신부는 제이슨에게 “나는 아무데도 발설하지 않을 테니 너도 말하지 말라”고 답한다. 이 상반된 두 답변은 나중에 상반된 결과를 낳게 된다. 두 소년의 사실이 전교생에게 알려지자, 한 명에게는 이겨낼 힘을 주는 말이 되었지만 다른 대답은 다른 한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답이 되고 만다.

 

극의 말미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제이슨의 모습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사랑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자신의 사랑과 성 정체성을 동시에 부정당하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제이슨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아픔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본능에 따라 자신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행동을 그대로 표현했을 뿐인데, 세상의 잣대를 통해 부정당하고 이해받지 못한다. 그저 ‘사랑’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물론 기존 고정관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형태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자체를 지저분한 행위라 규정짓는 모습은 죽음보다 더 한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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