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미아리_이야기(5)] 이기백의 유래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1.18 10:21 의견 0
지금 우리 나이로 기백이가 스물네 살이니까 벌써 24 년 전 일이다. 캐나다 퀘백주가 독립을 하네 마네 한참 시끄러울 무렵 나는 퀘백 몬트리올로 출장을 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하루가 넘게 걸리는 길고 긴 여행길이었다. 서울에서 거기까지 거의 28시간의 비행이었으니 말이다. 뉴욕을 거쳐 도착한 몬트리올의 11월은 무척이나 쌀쌀했다.

 

이틀 만에 일을 다 마치고 원하는 성과를 얻은 채 나머지 이틀은 올드 몬트리올, 뉴 몬트리올 등을 관광하며 다시는 못 오게 될지도 모를 이국의 정취에 흠뻑 취했다. 4박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출발하기 전 날 밤 처가에 가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아침에 출발해. 24시간 정도 걸리니까 모레에 만날 수 있겠군. 고덕동으로 바로 갈게."

 

전화를 받은 아내는 부득부득 공항으로 배웅 나오겠다고 우긴다. 하긴 결혼 후 처음으로 외국 출장을 나간 남편이 얼마나 그리웠겠나 아내는 운동 삼아 나오겠다는 거다. 그래야 순산을 한대나 아직 예정일이 며칠 더 남았으니 걱정 말라고 하면서.

 

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하고 전화를 끊었다."공항에 오다가 출산하면 ‘이공항’이라고 이름 지을 거고 버스를 타고 오다가 출산하면 ‘이버스’라고 지을 테니까 알아서 해."

 

다음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한 후, 호텔 로비에서 고집 센 아내가 혹시나 내 말을 안 듣고 공항에 배웅 나올 까봐 걱정이 되어 다시 한번 처가에 전화를 걸었다.

 

"장모님, 그 사람 좀 바꿔주세요. 그리고 공항에 절대 못 오게 말리세요."나의 말에 장모는 폭소를 터트리며 한마디 하셨다.

 

"이서방, 벌써 애 낳네. 지금 병원에 있어."

 

아내는 병원에 입원하자 마자 5분만에 아이를 순산했다는 거다. 나중에 둘째는 병원에도 못 가고 집에서 나았으니 아무튼 아이 낳는 건 선수다. 아내의 예정일 보다 빠른 출산 소식을 듣고 나는 기쁨에 앞서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10일 정도 뒤에 애 아빠가 될 거로 기대했었고 아직 아이 이름도 생각해놓질 않았는데 말이다.

 

미드를 좋아하는 두 아들놈들, 큰아들 이기백, 둘째아들 이기현 <p class=(사진 : 이정환)" width="548" height="318" /> 미드를 좋아하는 두 아들놈들, 큰아들 이기백, 둘째아들 이기현 (사진 : 이정환)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같이 출장 갔던 동료들의 축하주를 얻어 마시고 취해서 (물론 비행기 안에서 서비스로 주는 공짜 술이지만) 공항에 내릴 때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엔 인천 공항이 개항 전이라 김포 공항이 국제 공항이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공항에 내리자 마자 아내가 출산한 압두정동 윤호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내달렸다. 가운을 입고 퉁퉁 부운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의 볼에 살짝 입맞춤을 한 후 "수고했어." 라고 짧게 인사하고 신생아실에 누워있을 내 새끼를 보러 갔는데, 간호사 손에 들려있는 아이가 왜 그리도 못생겼는지, 또 얼굴은 왜 그리도 빨간지, 아무리 봐도 나나 아내를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은,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엔 꼭 이티 같아 보였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데 문득 이름이 하나 떠오르는 게 아닌가

 

'맞아, 이기백.'

 

아빠가 퀘백에 있을 때 엄마 뱃속을 박차고 급히 세상에 나왔으니 퀘백, 즉 기백이다.'

 

일어날 起 맏 伯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너무 좋아라 했다. 왜냐하면 아버님이 미리 지어 놓으신 돌림자가 들어간 이름이 아내는 내심 맘에 들지 않았던 터였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이미 오래 전에 태어나지도 않은 손주의 이름까지 작명해 놓으실 정도로 큰 손주에 대한 기대가 크셨다. 집안의 돌림자도 안 따른 아이의 이름에 반대가 심할 줄 알았는데 아버님은 의외로 ‘네 첫 아이이니 네가 좋을 대로 해라’ 셨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장모님이 심하게 반대를 하는 거였다.

 

이유인 즉, 아이 이름을 갖고 장난 치지 말라는 거였는데, 어느 아비가 아이 이름으로 장난을 치겠는가 나 역시도 아비로서 내 아이의 이름을 직접 짖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내 처가는 아내의 형제5남매 이름을 모두 유명 작명소에서 지었단다. 그리고 아이 이름은 꼭 그렇게 지어야만 한다고 믿고 계신 장모가 ‘아이 이름 가지고 장난 친다’ 며 절대로 이름은 작명소에서 전문가가 지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는 거다.

 

결국 장모와 나는 이기백이란 이름을 유명한 작명소에 가서 알아본 후 그 이름이 쓸 만하면 이기백으로 하고 작명소에서 좋지 않다고 하면 다른 이름을 사용하기로 하자고 합의를 보게 되었는데, 마침 작명소에서도 기백이라는 이름을 사용해도 좋다고 내 손을 들어 주었다.

 

아무튼 장모와의 첫 갈등은 그렇게 시작 되었고 나의 완전 소중한 첫 아들 기백이 이름의 유래는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