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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 (9)] "이젠 미아리가 고향이여"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1.25 10:14 의견 0
“아줌니, 이 놈 내 조카인데 술 마시고 싶다면 내 앞으로 달고 소주 한 병에 안주거리 좀 주세요. 술 값은 내가 낼 테니까.”

 

대학 입학 전까지는 하루에 소주 한 병 이상은 절대로 마시지 말라는 얘기를 덧붙이면서 외삼촌은 나를 포장마차 <그냥갈수없잖아>로 데려갔다.

 

그 날 외삼촌과 술자리를 경험한 이후로 수시로 나와 외삼촌은 포장마차 <그냥갈수없잖아>에 들러서 술을 마신 것 같다.반항심 많았던 내가 그 시절을 조용히 넘긴 건 순전히 외삼촌 덕분이다.

 

외삼촌은 나를 어린애 취급을 안 하고 눈높이를 맞춰 상대를 해줬던 게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장남인 나로서는 내 나이가 격어야 할 이런저런 고민을 상담할 상대가 없었는데외삼촌이 늘 말 상대를 해주었다.

 

40년 이상을 우리 집 근처에 살다가 몇 년 전에 전남 고흥군 나로도로 이사간 외삼촌과 나는 일주일이면 두어 번 이상을 만나서이런 저런 세상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술 자리를 함께 하곤 했다.

 

전라북도 익산(당시엔 지명이 이리였다)이 고향인 내 셋째 외삼촌은 화끈한 사나이 그 자체다.군대 생활을 마치고 큰 외삼촌이 운영하는 회사에 다니는 외삼촌은 여자들에게도 무지 인기가 많았다.물론 지금도 그러시지만.외삼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진돗개에 푹 빠졌는데 지금은 대한 진도 견 협회 소속 심사위원이며진도견 협회 이사직을 맡고 있다.

 

대학을 다니다 휴학하고 인터넷 전자 상거래 사이트로 돈 꽤나 버는 큰 딸,그 아이는 어릴 적엔 외삼촌 속을 무척이나 썩혔지만 요즘은 속이 꽉 차게 철이 들어서그나마 외삼촌의 속을 편하게 해서 다행이다. 그 계집애가 이번 달 매출이 1억 5천만 원 이란다.요즘 들어서 외삼촌의 딸 자랑이 엄청 늘었다. 한동안 삼촌의 속을 썩히던 아이였는데 다행이다.

 

둘째인 아들은 해병대 의장대 출신이다. 군 제대 후 휴학을 하고 지금은 중국에 유학 가서 중국어를 배우고 와서 지금은 누나의 사업을 돕고 있다. 그 놈은 군대운이 좋아서 해군 순항선을 타고 태평양을 유람하면서 군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어릴 적부터 엄마보다는 아빠를 따르던 그 놈은 진작에 철이 든 똘똘한 놈이다.

 

그 놈이 외삼촌의 희망이다.내가 대학에 합격한 해에 세상에 태어난 놈인데 그날이 12월 24일 이다.그 놈의 생일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예수님과 같은 날에 태어난 놈이니 말이다.아무튼 그 놈이 태어난 날 외삼촌과 나는 포장마차 <그냥갈수없잖아>에서 소위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난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온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고향에선 20년을 살았으니 미아리가 익산보다 더 고향 같다.이젠 여기에 길들여져서 딴 데론 이사 못 간다.” 늘 그렇게 말씀하시던 외삼촌은 몇 년 전에 나로도로 이사를 갔다. 매일 시흥동 공구 유통 상가로 왕복3시간 이상을 출퇴근 하면서도 외삼촌은 미아리가 제일 편하시다고 했다.

 

나로도 외삼촌이 서울에 오셨다. 서울에 오는 날은 나와 한잔 마시는 날이다. 나보다 열 살이나 위인 외삼촌은 65살인데도 무척 젊어 보인다. <p class=(사진 : 이정환)" width="550" height="367" /> 나로도 외삼촌이 서울에 오셨다. 서울에 오는 날은 나와 한잔 마시는 날이다. 나보다 열 살이나 위인 외삼촌은 65살인데도 무척 젊어 보인다. (사진 : 이정환)

나로도로 이사 가기 전 잠시 외삼촌이 분당에서 머물 때였다. 그 날은 외삼촌의 생일이었다. 그날 나는 외삼촌 가족과 함께 시내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는 거다. 원래 만나기로 한 7시가 조금 지나서 외삼촌께 전화를 걸었다.

 

"외삼촌 어디세요" "응, 사무실이다. 오늘 기분이 안 좋구나" 퇴근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사무실이라고 한다. "그래도 생신인데 식사는 하셔야죠." "그래 이따가 연락 줄게."

 

결국 외삼촌과 원래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난 9시가 조금 넘어서 외삼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난 번 만났던 종로2가 거기서 보자. 간단하게 한잔 하자." "미역국은 드셨어요 생일 축하합니다." "내 처지에 미역국은 무슨......"

 

또 외숙모와 안 좋은 일이 생겼나 보다.

 

안주를 주문하니 미역국이 따라 나왔다.

 

"하하하 이 집이 오늘 외삼촌 생신인걸 아나 봅니다. 이 미역국이라도 드시고 기분 푸세요."

 

외삼촌은 대답 대신에 쓴 웃음을 지으면서 쓴 소주를 들이킨다.

 

"미아리를 떠나니 재미가 없다. 나에겐 미아리가 고향인데.이젠 미아리가 고향이여"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던 외삼촌이 그립다.

 

아무래도 조만간 나로도 외삼촌네 팬션으로 놀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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