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_이야기 (11)] "사관과 신사" 그리고 정화와 민기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1.29 10:04 의견 0 1983년, 대학 1학년 시절 돈암동 음악다방에서 DJ를 할 때 일이다. 서빙으로 홀을 지키던 친구 영석이가 DJ 박스 안에 있는 내게 메모지를 건넨다. ‘조금 후에 참한 여자 한 명이 오니 잘 봐둬라. 마음에 들면 소개해줄게.’ 영석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한테 미팅을 주선하거나 여학생을 소개시켜 주기로 유명했다. 그 친구의 담임은 그게 미워서 생활기록부의 행동발달사항에 전부 '다'를 매길 정도였으니 대충 짐작들 할 거다. 다방 문이 열리고 긴 생머리의 아가씨가 들어오는데 딱 내 스타일이다. 재킷을 걸치고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책가방을 든 모습이 너무 예뻤다. 나는 DJ 박스에서 영석이한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내 DJ 타임을 마치고 DJ 박스 밖으로 나와서 마주앉아 얘기를 나눠보니 그녀도 내가 싫지 않은 분위기다. "오늘 시간 괜찮으면 영화나 보러 갈까요" 슬슬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데 고등학교 동창 민기가 다방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이놈이 다짜고짜 내 옆자리에 털썩 자리를 잡더니 눈을 휘둥그레 뜬다. "왜 아는 사이야"라고 물으니 얼마 전 다른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영석이한테 소개해달라고 졸랐던 바로 그 아가씨라는 거다. 영석이 표정이 굳어지며 안절부절 못한다. (사진 : 이정환)" width="550" height="367" /> 내가 DJ를 보던 돈암동 둥지다방이 있던 건물. 둥지다방은 이 건물 지하에 있었다. (사진 : 이정환) "민기야, 나가서 맥주나 한잔 마시자." 영석이가 민기를 달래는데 이놈이 요지부동이다. 그때 그 아가씨 이름은 정화다. 그녀는 재수생이었는데 무용과 지망생이었다. 아무튼 정화와 나는 미아리 대지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 <사관과 신사>를 보러 자리를 옮겼다. 대지극장은 지정석이 따로 없는 재개봉관이다. 한참 영화에 몰입하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옆자리에 앉는다. 민기다. 정화는 내 왼쪽에 앉았고 민기는 내 오른쪽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데 이놈이 계속 내게 추근댄다. 정화를 자기한테 양보하라는 거다. 찰거머리 같은 놈이다. 영화를 보느라 패줄 수도 없고, 평소에 민기는 내게 꼼짝 못하는 놈이었는데 이번엔 아무리 윽박질러도 요지부동이다. 영화에 제대로 집중을 못하고 영화가 끝났다. 민기는 자기가 생맥주를 살 테니 정화랑 같이 가서 맥주를 마시자고 한다. 아무튼 우리 셋은 맥주집에 자리를 잡았고 내 연락을 받은 영석이도 잠시 후에 합류를 했다. 영석이의 만류와 회유 덕분에 정화와 나는 그 불편한 자리를 슬그머니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결론은 물론 정화와 내가 사귀게 되었고 그 후로도 민기와는 늘 불편한 자리가 되었다. 요즘도 민기나 영석이를 만나면 그때 얘기를 하며 웃곤 한다. 그런데 민기가 기억하는 그 당시 상황은 내 기억이 사뭇 다르다. 자기는 그렇게 찌질했던 때가 없었다고 우긴다. 정화는 군 입대 전까지 약 1년이 조금 넘게 사귀다 헤어졌다. 친구들 사이에서 엄청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닭살 커플이었다. UP0 DOWN0 시사N라이프 이정환 기자 tom5148@hanmail.net 이정환 기자의 기사 더보기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