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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2)] 형식과 내용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1.30 13:43 의견 0

사진 공부는 ‘사진의 형식과 내용’을 만들고 담는 공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고 내용은 형식에 담기는 어떤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박은 수박 알맹이를 담습니다. 물론 호박은 호박 알맹이를 담지요.

수박의 모양은 형식이고 수박의 알맹이는 내용입니다. 호박도 그렇지요. 이렇듯 형식과 내용은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라는 유명한 글을 쓴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조차 “형식은 내용의 일종이고 내용은 형식의 한 측면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이 옳다고 보면 형식과 내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형식이 곧 내용은 아닙니다. 형식은 모든 존재하는 요소나 그 이행의 과정을 통합하여 일정한 존재, 일정한 과정으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내용은 그 안에 통합되어 있는 어떤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어떠한 것도 형식과 내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찍는 사진은 바로 형식이자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사진을 찍는답시고 죽도록 앞 세대가 남기고 간 ‘형식’만 흉내 냅니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형식에 일련의 내용이 담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김홍희 작가 제공 김홍희 작가 제공

몇 십 년을 투자하고도 앞 세대의 실험이 끝난 형식만 흉내 내다가 사라진 아마추어 사진가가 부지기수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모릅니다. 선배가 한 일을 이어서 한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럼 어떻게 새로운 사진이 등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형식과 내용이 잘 어우러질 때 또는 그런 글을 써 낼 수 있을 때 군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사진을 논하는 상황으로 옮기면, 형식과 내용이 잘 어우러지고 새로운 세계를 가리키는 힘이 있다면 좋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본다면 사진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내용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형식에 치중하는 동안 소위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사진을 발표하면서 유명세를 떨칩니다. 이것은 바로 그 작가가 사진의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승부하기 때문입니다. 내용을 담기 위한 형식도 함께 창조하며 일반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구도나 형식미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일반인은 형식미만을 추구하지만 선수는 내용과 형식의 일체를 추구합니다. 형식미를 배우는 것은 인터넷이나 일반 선생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직 한국 아마추어 사진의 현주소는 형식미의 완성을 추구하는 중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이런 것을 ‘형식주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정도 수준은 동네 친구나 인터넷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이 보아 왔고 낯익기 때문이며, 흉내 내기도 쉽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형식과 내용의 일체의 경우는 동네 친구나 인터넷이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선생을 만난다고 배움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진 수업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입니다. 마치 비전을 가르치는 듯 강의하지만 절대 다수는 ‘사진기 수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진기를 잘 다룰 수 있는 수업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인문학적 기본 소양이나 문화사, 예술사, 또는 철학사를 바탕으로 한 사진 강좌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사진을 공부하는 데 무슨 철학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선생이 있다면 그가 바로 최악의 선생이지요.

최소 이런 전공이 아니더라고 온몸과 마음을 다해 사진의 본질, 즉 예술의 본질에 가닿아 보려고 피나는 노력하거나 닿아 본 사람만이 형식과 내용을 일체화하는 법을 전수해 줄 수 있습니다. 도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형식이 훈련된 언어라면 내용은 비명 같은 구음이기 때문입니다. 구음은 어느 민족에게나 통하는 또 하나의 언어입니다. 이것은 이심전심으로 전해집니다. 이것이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보편적이라고 말 할 수는 있으나 과학적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딱히 콕 집어 뭐라고 할 수 없는 어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제 시스템을 통해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전수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진가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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