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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8)] 사진(寫眞)과 포토그라피(photography)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2.07 14:46 의견 0

사진은 일본에서 건너 온 용어입니다. 한자의 의미를 그대로 옮기면 베낄 사(寫)참 진(眞)으로 ‘참을 베끼다’라는 뜻이 됩니다. 영어는 다 아시다시피 ‘빛으로 그리는 그림’ 쯤에 해당 됩니다.

우리는 ‘참을 베끼는 것’이 사진이고, 영미권의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것’이 됩니다. 중국은 또 우리와는 좀 다른 용어를 씁니다. 조편(照片), 상편(相片), 상편(像片)이라고 각각 사진을 나타내는 용어들입니다. 그래서 뭐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사진에 대한 출발이 완전히 다릅니다.

여러분도 사진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찍는 것’, 즉 ‘베끼는 것’을 사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대개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 그 자체로 완벽하고 완성된 이미지가 나올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당연히 그런 거 아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사진을 인화할 때 손을 대면 안 된다고 맹신 하더군요. 특히 디지털 후보정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며 조작이라고까지 단정하는 분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김홍희 작가 제공 김홍희 작가 제공
김홍희 작가 제공 김홍희 작가 제공

사진을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 할까요 그들은 암실 작업이나 디지털 후보정을 너무 당연시 여기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사진이 창작된다는 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에게 사진을 ‘그리는 것’이니까요.

사진과 포토그라피는 사진에 대한 개념 출발 자체가 이렇게 다릅니다. 이유는 이미 아셨겠지만 사진을 ‘찍거나 베끼는 것’으로 개념이 고정된 사람들과 ‘그리다’로 개념 출발을 한 사람들의 생각 차이가 이렇게 사진에 대한 자세를 다르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 사진에 대해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할까요 베끼는 사람은 베낄만한 것을 찾아 다녀야 하고, 그리는 사람은 그릴만한 것을 찾아다니게 되겠지요. 베끼는 것은 사실에 충실해야 할 것이고, 그리는 것은 자신의 그려낼 수 있는 내면의 충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전자는 포토저널리즘으로 가기 쉽고 후자는 예술로 갈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실은 둘 다 ‘찍거나 베껴서’ 암실이나 디지털 후보정을 통해 ‘그려야만’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사진을 진실한 이미지로 착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찍거나 베낀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진은 찍기만 한 것을 발표해야 하고, 후보정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언어란 우리를 이렇게 편파적이고 고질적인 사고로 고착 시킵니다. 이렇게 고착되고 만연된 생각은 새로운 길을 만들려는 길을 방해하는 거대한 벽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과 인문학으로 무장한 용기 있는 사진가들이 새로운 사진의 시대를 불러오고 이끌어 나가게 됩니다. 이것을 바로 새로운 사조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도도히 흐르는 사진사(寫眞史)의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을 미주에서만 주도 하라는 법이 있습니까

21세기에는 세계의 사진사를 새롭게 짜는 한국의 사진가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 합니다. 지금 한국은 세계의 한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구의 철학보다 탁월한 유불선이라는 정신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의 생각을 담고 밝히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습니다.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새로운 우리의 길을 만들어 그들이 따라오게 하면 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사진을 베끼지도 않고 그리지도 않는 새로운 생각을 창출해야 합니다. 이 상대적 생각으로부터의 초월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당신 머리속의 사진은 아직도 베끼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그리고만 있습니까

사진가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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