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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10)] 언어(言語)와 구음(口音)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2.09 14:52 의견 0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사람들은 동쪽으로 옮아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는 의논하였다.[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550"]김홍희 작가 제공 김홍희 작가 제공"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야훼께서 땅에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을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위의 이야기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바벨탑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힘에 대한 야훼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전통적인 언어로 사유의 도구이자, 설명 수단으로 특권을 누려 온 말입니다.

‘벽돌을 빗어 불에 단단히 구워 돌 대신에 역청을 써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라는 등의 조리 있는 표현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하나라 결집 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정신적 목표를 설정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언어의 힘입니다.

또 하나의 언어는 구음입니다. 구음의 사전적 의미는 ‘구강으로만 기류를 통하게 하여 내는 소리’라고 정의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광의로는 울음소리나 비명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여자의 비명 소리 같은 것이 들리면, 당사자가 몹쓸 일을 당하고 있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반가워 소리를 지르는 지 우리는 단박에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구음이라고 합니다.

구음의 특징은 단말마적 비명 한 소절에 그 상황 전체의 분위기를 꿰뚫게 해주는 전달력이 있으며, 언어가 다른 사람들도 누구나 단박에 해득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진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대개 사진을 영상언어라고 말 합니다. 이 때의 언어는 말 그대로 언어를 지칭할까요 아니면 구음을 가리킬까요 언어를 가리키면 저널이나 공적 다큐멘터리 성향이 강한 사진이 됩니다. 반대로 구음을 가리키면 예술이나 사적 다큐멘터리의 성격이 강해집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어느 쪽을 가리키던지 둘 다 완전한 의사소통은 불가능 합니다. 이것이 사진이라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숙명입니다.언어적 사진이나 구음적 사진 모두 전제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말 그대로 언어인 제목이나 작가 노트를 통해 작가의 의도, 즉 전제를 드러내게 됩니다. ‘한 장의 사진으로 모든 것을 말하라’고 하는 것은 완전을 향한 우리들의 바램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제목이나 작가 노트의 첨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진은 언어적 요소와 구음적 요소 모두를 겸비합니다. 우리가 한 장의 사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할 때, 제목이나 캡션 또는 작가노트가 없어도 누구나 알거나 느낄 수 있게 하는 사진. 이것이 바로 그 사진의 역할을 다한 명작이 되겠지요.당신의 사진은 언어입니까 구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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