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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 (12)] "내 따띠오 내 따띠오 내 끈 따띠로또이다"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1.30 12:44 의견 0
돌아가신 할머니가 천주교 신자고 집안이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할머니의 장례를 성당에서 치렀다. 할머니 장례를 치룬 하월곡성당은 지하에 장례식장이 마련되어 있을 만큼 규모가 큰 편이다. 저렴한 비용과 신자들의 도움으로 할머니의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또한 보좌신부님이 막내 동생의 친구라서 여러 편의를 받았다.

 

이틀간 장례식을 잘 치르다가 마지막 날 저녁에 불상사가 있었다.

 

한쪽에서 고스톱을 치다가 당숙 한 분이 술에 취해서 시비가 붙은 것이다. 작은 아버지가 나서서 말렸지만 결국 작은 아버지마저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다. 다들 지쳐있어서 여유가 없었던 거다. 겨우 진정을 시키니 또 한곳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화환을 왜 자기 마음대로 치워요 그거 내 친구가 다 회수하기로 했는데.” 둘째 동생이 어머니께 소리를 지른다.

 

내용을 알아보니 이모가 성당신자 중에 한 분한테 장례화환을 준 거다. 들어온 화환이 많다 보니 그게 용돈 벌이라도 되는 가 보다. 열심히 도와준 성당 분들의 소주 값이라도 하게 양보를 해도 될 일이지만 동생은 이모가 나서서 그러는 게 못내 싫었던 거다. 이모네 식구들도 하월곡성당에 다녔는데 레지오 활동 등 성당 일에 적극적이었다.

 

동생은 입으로만 성당을 찾고 하느님을 찾으며 주님의 사랑이 어쩌네 저쩌네 한다는 이유로 이모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이모한테 화를 낼 수가 없던 동생이 괜히 어머니한테 화를 낸 거다. 이틀을 꼬박 세우면서 손님을 치르느라 다들 지쳐서 그런지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다. 결국 아버지가 나서고 난 후에 겨우 진정이 됐다.

 

“장지로 떠나야 하니까 다들 일찍 아침 먹고 성당으로 올라가서 장례미사를 지내자. 술은마시지 말고, 장지에서 마시든지 해라. 운구차는 성당 앞에 있으니 그리 알고.”

 

아버지가 자리를 정돈한다.

 

우리집은 본가나 외가 모두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다. <p class=(사진 : 이정환)" width="550" height="367" /> 우리집은 본가나 외가 모두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다. (사진 : 이정환)

 

장지인 삼례로 떠나기 전 아침을 먹고 장례미사를 지내려 일가친척모두 성당으로 모였다. 장례미사인지라 숙연하게 미사를 보는데 순간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들린다. 터지는 웃음을 참으려는 소리인데 나는 복잡한 생각에 미사에 집중을 못하고 딴 생각을 하느라 사태파악이 늦었다.

 

백 신부님이 떠나신 후에 새로 부임한 신부님의 말씀이 문제였다. 신부님의 혀가 짧은 거다.

 

“짜… 기또 합띠다. 하느데 계띤 하느님 아버띠의 마뜸이 거둑끼 빈나띠며... “웃음이 터질 뻔 했지만 아버지의 일그러진 인상을 보고 겨우 참았는데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를 “내 따띠오 내 따띠오 내 끈 따띠로또이다.” 고 발음을 하는 거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성당 밖으로 나왔다. 성당 안이 웃음바다가 됐다. 미사를 마친 후 신부님이 아버지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데가 혀가 딻아서 똠 우뜹죠잉” 이라며 웃으신다.

 

아버지 어머니는 주일마다 미사를 보느라 신부님의 혀 짧은 발음이 익숙했지만 타지에서 온 친척 분들은 그 혀 짧은 소리를 참을 수 없던 거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도착한 삼례 장지엔 익산에서 사목을 하는 막내 외삼촌인 요한 신부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참 정이 많으신 분이셨는데……” 라며 내게 위로를 한다.나는 속으로 ‘할머니가 그런 분이셨나’ 생각했다.

 

나와 동갑인 외삼촌 요한 신부님에게 사돈인 할머니는 그런 기억이었나 보다. 평생을 당신 자식들밖에 모르던 분이셨고 큰 손주 며느리인 기백엄마를 평생 미워하며 구박만 하다가 가신 분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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