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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 (13)] 장어구이집 아줌마 점순이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1.31 11:29 의견 0
15년 전쯤 미아삼거리 대지극장 뒷길, 속칭 여관골목 어귀에 조그만 장어구이집이 들어섰다. 그 가게엔 테이블이 고작 세 개뿐이었다. 여관골목에 위치한 카바레 손님들을 주 대상으로 영업을 했는데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카바레 손님들은 이 집에서 소주로 술기운을 돋우고 카바레로 들어갔다.

 

어느 날 집으로 귀가하던 중 소주나 한잔 마실 요량으로 들러 장어구이에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그런데 장어구이 맛이 실내 포차 수준치고는 매우 훌륭한 거다.

 

“아저씨, 장어구이 소스를 직접 만드시나요”“네, 제가 직접 만듭니다.”사장이 수줍은 듯 배시시 웃으며 대답을 한다. 말 수가 상당히 적어 보이고 순진해 보이는 사장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며칠 후 추석연휴가 되었다. 가족이 전부 모여 차례 음식 만들 때 동생과 나는 옆에서 한잔하면서 낮부터 얼큰하게 술에 취했다. 저녁이 한참이 지나도록 술 잠에 빠졌던 동생과 나는 한참이나 늦은 밤 시간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었다.

 

“술 한 잔 더 마셔야지”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동생이 답한다.

 

“응, 형, 우리 나가서 먹을까 종일 기름 냄새 맡았더니 지겹네.”

 

조금은 쌀쌀해진 날씨에 주섬주섬 옷가지를 걸치고 나가려는데 아내가 제동을 건다.“뭘 나가서 돈 주고 먹어요 그냥 집에서 한잔 하시지.”그 말을 듣고 내가 답했다.

 

"당신도 제수씨도 같이 나가자. 맥주 사줄 테니까. 종일 전 부치는 냄새 맡았더니 머리가 다 아프다.”아내는 아버님 어머님 눈치를 보느라 망설이는데 제수씨가 센스 있게 끼어든다.“그래요 형님, 우리 나가서 맥주 한잔 마셔요. 바람도 쐴 겸.”

 

하지만 추석날이라 그런지 단골술집들은 전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나는 동생에게,"장어구이나 세꼬시는 어떠냐” 라고 제안을 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동생은 “장어구이 좋지.”라며, “어디 좋은데 있어” 묻는다.나는 동생과 아내 그리고 제수씨를 이끌고 골목어귀에 있는 그 장어구이집으로 갔다.

 

그 후로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난 장어구이집은 대박이 났다. 근처 큰 가게 자리를 얻어서 이전을 했는데 이전한 자리는 어떤 식당이 들어와도 6개월을 못 버티는 자리였다. 점순이네 장어구이집은 그 징크스를 깼다. 미아삼거리 먹자골목의 명소가 됐다. 지금은 그 자리에 양꼬치집이 들어섰는데 그 집도 동네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p class=(사진 : 이정환)" width="550" height="367" /> 그 후로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난 장어구이집은 대박이 났다. 근처 큰 가게 자리를 얻어서 이전을 했는데 이전한 자리는 어떤 식당이 들어와도 6개월을 못 버티는 자리였다. 점순이네 장어구이집은 그 징크스를 깼다. 미아삼거리 먹자골목의 명소가 됐다. 지금은 그 자리에 양꼬치집이 들어섰는데 그 집도 동네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사진 : 이정환)

 

장어구이집 사장이 반갑게 맞이한다.“추석연휴인데 장사하시네요.” 전에 한 번 와봤다고 아는 체를 하며 들어서자 남자 쥔장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네, 돈 벌어야죠. 어디 갈 형편이 못됩니다.” 고단한 얼굴로 대답하는 주인장 얼굴이 왠지 어둡다‘무슨 사연이 있나 보군.’ 이라 생각하며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으면서 장어구이를 주문하니 주인장이 세꼬시가 물이 좋다며 세꼬시를 권한다. 주인이 권하는데다가 마침 아내와 제수씨가 회를 좋아하는지라,

 

“그럽시다. 세꼬시 한 접시 주세요. 장어구이도 2인분 주시고요. '우리는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술자리 분위기를 덥혀갔다..

 

11시 경이나 되었을까 장어구이집 사장의 아내인 듯한 아주머니가 가게로 들어온다.

 

“오늘은 장사가 어땠어요” 라고 묻는데 쥔장은,“응, 첫 손님이야.” 라며 힘없이 쓴 미소를 짓는다.

 

그러데 장어구이집 아줌마가 상당히 낯이 익다.‘이상하다, 저 아줌마를 내가 어디서 봤더라’

 

“아주머니 저 모르시겠어요 왜 이리 낯이 익지” 라는 내 물음에 수줍어하며 고개를 제대로 들지도 못하면서 대꾸를 못한다.

 

‘수줍음이 많은 여잔가 보군.’ 하고 생각하는데 아내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아니 이 사람이 마누라 옆에 두고 바람을 피우려고 수작 거네.” 평소에 농담 잘 못하는 아내의 너스레에 술자리엔 한바탕 폭소가 지나가고 간만에 둘째네 부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동생은 그 집 장어구이의 맛에 푹 빠졌는지 “자주 오겠습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우리는 술자리를 정리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추석 제사상을 준비하려면 어쩔 수 없기에 아쉽지만 이 정도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자리를 뜨며 동생이 사장에게 “아저씨 내일도 영업 하세요” 라고 묻는다.내가 “왜 너 내일 처가에 인사하러 안 가냐” 라고 물으니 모레 가겠다고 내일 밤 심심할 때 와서 한잔 더 해야겠단다.

 

 

다음 날 차례를 지내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가 있는 암사동으로 향했다.처가와, 특히 장모와 사이가 별로인 나는 처가에선 항상 찬밥 신세다. 장인 장모께 인사를 드리고 저녁을 얻어먹은 후 한쪽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어디냐” 셋째 외삼촌이다. 셋째 외삼촌은 연휴 때면 항상 익산에 계신 외할머니를 뵈러 가시기 때문에 서울에 계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저는 지금 암사동인데 외삼촌은 어디세요”

 

“응, 지금 평창동 큰 외삼촌 댁인데 이제 자리 파했다. 미아리에 가려는데 한잔 마시자.”

 

마침 외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손님 오는걸 꺼리시기에 이번엔 익산에 가는 걸 포기하고 큰 외삼촌 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던 거다.

 

나는 “좀만 기다리세요.”라고 대답하고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처가에 와서 제대로 사위 대접을 못 받고 처량하게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는 남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아내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에,“그래, 난 애들하고 더 있다가 연휴 마지막 날 갈 테니, 자기는 외삼촌 만나서 소주나 한잔 마셔.”라며 허락을 한다.

 

집으로 가면서 외삼촌께 전화를 걸었다.“외삼촌 장어구이 좋아하시죠 좋은 집 생겼어요.”외삼촌에게 장어구이집 위치를 알려준 후 집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그 집으로 나오라 했다.

 

역시 그날도 손님 한 명 없이 우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하기야 추석날 누가 바깥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겠는가!

 

“저, 어제 말씀 하신 거요.”장어구이집 아줌마가 조심스레 운을 뗀다.

 

“네 무슨 얘기요” 내 대답에 조금 무안했던지 얼굴에 홍조를 띠며 상기가 된 아줌마는 말을 더 잇지 않고 “아니에요.” 라며 술상을 차린다.

 

“아니! 정말 저랑 어디서 보지 않았나요” 라고 다시 한 번 묻자 그제야 아줌마가“혹시 이 동네에서 오래 살지 않았나요 저 위 5번지에서.” 라고 되묻는다.

 

그러자 동생이 옆에 있다가“네, 맞아요. 우리 4번지에서 오래 살았어요.” 라며 내 대답을 뺏어간다.

 

“그럼 맞겠군요. 숭곡 국민학교 나오셨죠” 라며 말을 꺼내며 “저...... 오빠, 저 국민학교 일년 후배 점순이에요. 예전에 아파트에서 같은 과외 다녔잖아요.” 라고 말을 꺼내며 이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차마 남편이 있는 앞이라 더 친한 척은 하질 못하고 외삼촌과 나 그리고 동생은 시답지 않은 옛날얘기를 나누며 그날의 술 자리를 마쳤다. 1년 후배 점순이를 삼십여 년 만에 그렇게 만난 것이다.

 

'이런! 그 귀엽고 쾌활했던 점순이가 이렇게 변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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