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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 (14)] 동네깡패 상군보살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2.01 10:56 의견 0
상군암 보살할매는 동네 깡패다. 아무도 못 말린다.

 

한번은 열두 시가 넘은 시간인데 여관골목이 떠나갈 듯이 시끄럽다. 여자가 악다구니 쓰며 소리를 지른다. 대부분이 욕설이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내려가 보니 우리집 앞 식당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상군암 보살할매다.

 

“야이 씨벌놈아, 소주 좀 가져오라니까”

 

척 보니 어디서 술에 취해 들어가다가 이 집에 들러서 술을 달라고 했나 보다. 너무 취한 상태라 주인이 좋은 의미로 '이제 그만 드시고 가서 주무시라' 고 한 게 발단이 됐다. 물론 고깃집이라 혼자서 온 손님이 반갑지도 않을뿐더러 하필이면 동네에서 소문난 깡패할매였으니 주인도 답답했을 것이다. 말이 손님이지 공짜 술을 달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신고도 할 수가 없다.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잠시 후 지구대 경찰 몇 명이 출동을 했다. 경찰이 와도 소용이 없다. 지구대에도 이미 상군암 보살할매의 악명은 자자했다. 물론 지구대에는 내가 신고를 했다.

 

결국 새벽 두 시까지 실랑이를 벌이다 그 보살할매가 지구대로 가면서 상황은 끝났지만 그 식당의 새벽 장사도 같이 끝났다. 그 악연이 계속 이어지며 뻑 하면 시비를 거는 보살할매 때문에 식당은 결국 몇 달을 더 못 버티고 문을 닫고 말았다.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이유가 크게 한 몫을 했음은 분명하다.

 

또 한 번은 상군암 맞은편에 있던 하림 닭 대리점이 겪은 큰일이 있었다.당연히 하림 닭 대리점은 여름철이면 냄새가 좀 난다. 그래서 하림 닭 사장은 청결에 무척이나 신경을 쓴다. 늘 깨끗하게 물청소를 하는데 어느 날 청소를 하다가 상군암의 문짝에 물이 조금 튀었다. 결국 그 핑계로 상군암 보살할매가 폭발했다.

 

“씨발놈아, 가뜩이나 냄새가 나서 살 수 없는데 어디다가 드런 물을 튀기고 지랄이야”

 

그렇게 시작한 욕이 서너 시간이나 계속 됐고 하림 닭 사장이 거의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는데도 끝나질 않았다. 그날도 누군가가 신고를 해서 경찰이 왔는데 경찰들도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이 보살할매의 폭발은 '지 풀에 지쳐야' 끝나기 때문이다. 꼭 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가게를 넓힌 겸 하림 닭은 이사를 갔다.

 

미아삼거리에서 약 50여 개의 점집과 암자가 들어서 있다. 상군암도 그 중에 하나다. <p class=(사진 : 이정환)" width="550" height="367" /> 미아삼거리에서 약 50여 개의 점집과 암자가 들어서 있다. 상군암도 그 중에 하나다. (사진 : 이정환)

 

“이런 씨벌, 누가 여기에 이런 걸 버렸어”

 

또 동네가 시끄럽다.

 

상군암이 있는 연립주택 앞은 고물상이다. 당연히 가끔 고물이나 폐지들이 늘어서기 일쑤인데 이 아줌마는 그날 자신의 기분에 따라 행동한다. 그 날은 상군암 보살할매의 기분이 저기압이었나 보다.

 

고물상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사는 집이다. 그런 사실을 상군암 아줌마가 모를 리가 없는데도 이 아줌마는 욕지기를 먼저 내뱉는다. 그럴 때면 고물상 할아버지도 대꾸 안하고 조용히 집 앞에 쌓인 물건들을 정리한다.

 

그런데 조금씩 이 할매한테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장군보살 할매의 사람 사귀는 습성을 알 게 됐다. 먹자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구멍가게가 있는데 구멍가게 앞 파라솔은 한물간 동네 건달들의 집합소다. 백주대낮부터 서넛이 모여 막걸리를 마신다. 가끔 상군보살 할매도 자리에 끼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들한테 별로 환영 받진 않는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동생 동생’ 하면서 무지 살갑게 말을 건다. 그러니까 이 할매는 센 사람한테는 약하고 착한 사람한테만 센 거다.

 

그런데 상군암 보살할매의 불 같은 성질이 한풀 꺾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루는 여관골목 세꼬시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구니까 옆 테이블 총각이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그게 시비가 됐다. 또 한 번 걸진 입담으로 욕을 해대는 데 그 총각이 곧바로 주먹을 날리며 패대기를 쳤다. 보살할매가 악다구니를 쓸수록 총각도 같이 욕을 해대며 주먹과 발길질로 아주 박살을 냈다. 그러고 나선 경찰이 오기 전에 도망을 갔다.

 

그 총각은 미아삼거리 빅토리아호텔 나이트클럽 돈텔마마의 웨이터였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보살할매의 기가 많이 꺾였고 부쩍 늙어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 웨이터와 누님 동생 사이가 돼서 잘 지낸다.

 

어제는 운동 삼아 밤마실을 갔다가 새로 생긴 장어구이집 앞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할매를 봤다. 지금까지 나와 보살할매는 서로 마주쳐도 한 번도 아는 체를 한 적이 없다.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기백아빠 한잔 마시고 갈래요”

 

헉! 이 보살할매가 나를 알고 있었던 거다. 앞으로는 마주치면 인사를 제대로 해야겠다. 봉변 당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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