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_이야기 (16)] "아빠 나 배 아파"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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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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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부도를 맞고 잠시 친구네 음료수공장 일을 도울 겸 부여에 내려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어린이 날 연휴를 맞아 서울에 있는 가족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의 한 달 간을 떨어져 살았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겠는가 아이들이 오는 시간을 기다리다 지쳐서 조금 일찍 1톤 포터 트럭을 몰고 부여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도착 시간 30 여분 전이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가족들을 기다리면서 차 안에서 담배를 대여섯 개피나 피웠나 보다. 저만치 정류장에서 나오는 아이들이 보인다.
"기백이, 기현이. 엄마 말씀 잘 들었지"아빠를 보고 이 놈들 너무 기뻐한다.
"아빠, 운전도 할 줄 알았어"
"왜 아빠는 운전 못 하는 줄 알았냐”
이놈들이 똑같이 외친다. “응”
일단 부여 읍내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텔레비전을 빼고는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공간이 아이들에겐 무척이나 낯선가 보다. 마당에 나와 하늘을 보니 서울과는 다른 별천지가 보인다.
"기백아, 저게 은하수야. 서울에선 볼 수 없었지"
버스를 타고 오느라 피곤했던지 아이들은 일찍 잠에 빠진다.
"기백엄마, 미안해. 나 때문에 고생이 너무 많지 언제 다시 서울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힘 낼 테니, 조금만 더 고생해."
“혼자 있다고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몸이나 잘 챙겨요.” 라고 대답하는 기백엄마의 눈에 물기가 고인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과 부여 박물관을 견학하고 낙화암에 올랐다. 그리곤 차를 몰고 대천 해수욕장으로 갔다. 기백이가 좋아하는 회나 사 먹이려고...... 그런데 막상 가본 대천 해수욕장 근처에는그다지 마음에 드는 횟집이 보이질 않았다.
"얘들아, 우리 자장면이나 먹으러 가자. 회는 저녁에 먹자꾸나.”"네, 아빠"
식사를 대충 마친 후 자연 휴양림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아빠 어서 횟집에 가요." 회귀신인 기백이가 서두른다.부여는 내륙이라 회가 무지 비싸다는 걸 어린 놈들이 알 턱이 있나 아무튼 약속은 약속이니 부여 읍내에 하나 밖에 없는 일식집으로 갔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횟집이 쉬는 날이었다.
물론 당시 내 주머니 사정상 속으로 다행이다 싶기도 했지만. 하는 수 없이 새로 생긴 숙소 근처 고깃집에 갔는데, 실망이 컸는지 이놈들이 연신 투덜거리기만 한다. 고기 몇 점을 먹는 척 하더니 이내 젓가락을 놓는다.
"아빠 배 아파서 못 먹겠어요."
그날 결국 기백이는 저녁을 굶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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