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미아리_맛집_이야기(1)] “추위와 어색함을 사라지게 하는 냄비요리” - 오복 닭 한 마리

윤준식 기자 승인 2018.02.08 11:46 의견 0
이정환 작가라는 분을 소개받았다. 사진작가라고도 하고 음식 칼럼니스트라고 언론인이라고도 하는데 설명이 길어질수록 정확히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사람을 소개받는 자리에는 소개하는 사람이 함께해야 어색함도 줄이고 대화의 맥도 잡아가기 쉽다. 그러나 소개한 지인은 지방에 사는 분이라 함께 만나기 어려워 이름과 전화번호만 전달받는 것으로 끝났다.

 

“미아삼거리 먹자골목에서 만납시다. 그 앞에서 기다릴게요.”4호선 미아사거리 역을 향했다. 지금은 ‘미아사거리’라 하지만 얼마까지만 해도 ‘미아삼거리’역으로 불리던 곳이다. 미아삼거리와 미아사거리, 둘 다 존재한다. 그 사이에 지하철역이 있는데 실측결과 미아사거리가 조금 더 가깝다는 이유로 역명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서울살이가 오래된 분들은 ‘미아삼거리’가 랜드마크다. 그래서 ‘미아사거리’라 써도 ‘미아삼거리’라 읽는다. 이놈의 행정이란!

 

저녁 어스름의 미아리 먹자골목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550" height="244" /> 저녁 어스름의 미아리 먹자골목 (사진: 윤준식 기자)

 

미아사거리역 2번출구로 나오는데 바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이분이다’ 싶었다. 그러나 혹시 몰라 전화를 걸어보았다. 눈이 마주친 남자의 손에서 핸드폰이 울린다.“안녕하세요 제가 연락드린 윤준식 기자입니다.”

 

아주 짧게 미아삼거리 먹자골목 설명을 듣고 우선 배고픔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소문난 먹자골목답게 맛있는 가게들의 리스트를 주욱 늘어놓으신다. 다 먹어보고 싶다. 그러나 첫 만남이다. 기분이 어색하다. 게다가 날이 춥다. 뭔가 얼굴을 맞대고 불을 쬐는 느낌으로 소주 한 잔 할 만한 게 있을까

 

소문난 맛집으로 분점까지 3개나 있다는 오복닭한마리. 지금은 다른 메뉴도 추가되어 간판이 바뀌었다.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550" height="413" /> 소문난 맛집으로 분점까지 3개나 있다는 오복닭한마리. 지금은 다른 메뉴도 추가되어 간판이 바뀌었다. (사진: 윤준식 기자)

 

“오, 여기 닭한마리도 괜찮아!”순간 잽싸게 고개가 돌아갔다. 그래 냄비 하나 놓고 끓여 먹는 거, 그게 좋겠다. 삼겹살이나 돼지갈비는 굽느라 정신이 없어서, 또 타들어 갈까봐 처음 만난 사이에서는 대화가 제대로 되지 못한다. 매운 탕 종류도 호불호가 있기 마련. 그렇게 본다면 닭한마리는 매우 괜찮은 메뉴다.

 

“저 닭한마리 좋아합니다. 그리로 가시죠”우리가 들어간 가게의 이름은 ‘오복 닭한마리’. 미아삼거리에서 유명한 가게라 한다. 본점, 분점 합쳐 모두 3개나 있다. 얼마나 맛 있길래 사실 집에서 가까운 공릉동 닭한마리를 자주 찾은 덕분에 다른 곳의 닭한마리는 여간해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큰 기대를 버리고 그저 따끈한 술안주가 있어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물김치 느낌의 김치는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었다.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550" height="413" /> 물김치 느낌의 김치는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었다. (사진: 윤준식 기자)

 

기본 상차림이 시작되었다. 눈 앞에 놓인 김치와 다대기를 대하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다대기의 향이 군침을 돌게하고 위장을 자극해 꿈틀꿈틀 준비운동을 시키는 것 아닌가 첫 만남인데 예의고 뭐고 차릴 것 없이 김치를 한 젓갈 집어 입 속에 넣어 보았다. 맵지도 짜지도 않은 담백함, 그리고 시원한 맛이 절묘하다. 이어서 완성될 닭한마리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졌다.

 

대화고 뭐고 빨리 닭이 끓었으면 좋겠다. 먹어보고 싶다.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해지며 우리는 닭이 끓기 전 김치를 안주로 소주를 한 병 비웠다. 어느 정도 끓기 시작하자 김치를 넣으신다.“이렇게 하면 더 맛있어. 기다려봐.”잠깐의 제지로 마음이 슬퍼진다. 얼른 맛보고 싶은데, 김치를 넣으면 국물의 온도가 내려가잖아. 다시 끓으려면 10분은 기다려야겠다. 그래. 그래도 참자. 기다림의 미학이란 게 있지. 더 맛있겠지.

 

김치를 넣어 한 번 더 끓이면 김치가 가진 맛이 어우러져 더욱 오묘한 식감과 시원한 국물맛을 즐길 수 있다.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550" height="413" /> 김치를 넣어 한 번 더 끓이면 김치가 가진 맛이 어우러져 더욱 오묘한 식감과 시원한 국물맛을 즐길 수 있다. (사진: 윤준식 기자)

 

드디어 완성. 손수 앞 접시에 조금 덜어주신다. 엄습해있던 추위와 공복감 탓에 냉큼 입으로 가져가려다가 잠시 멈췄다. 보기에는 매우 촌스러운 구성인데 뭔가 느낌이 다르다. 김치가 우려진 국물을 천천히 맛본다. 시원하다. 야, 이거 절묘하다. 김치도 맛있는데, 그래서인지 닭한마리 국물도 이렇게 시원하구나. 닭을 끓여 달콤한 국물에 김치의 시원함, 배추자체의 단맛이 어우러져있다.

 

담백함을 유지하면서도 감칠맛과 달콤함이 자연스럽게 입 속에 퍼져나간다. 김치의 시원함이 영글어 나처럼 뜨거운 것을 못 먹는 사람도 퍽퍽 국물을 떠먹으며 즐기게 만든다. 이 국물만으로도 60점이다. 닭고기는 나중. 이 요리, 전형적인 소주 도둑이다. 소주 한 잔에 국물 한 숫갈, 소주 한 잔에 김치 한 점, 소주 한 잔에 닭고기 조금, 순식간에 2병을 더 비우게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비유한다면 '오복 닭한마리'는 믿고 먹어주는 간판급 배우인 닭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평범한 상차림 속 다대기와 김치가 훌륭한 신스틸러였다. 이런 맛의 반전이 먹는 즐거움을 준다.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550" height="413" /> 영화나 드라마에 비유한다면 '오복 닭한마리'는 믿고 먹어주는 간판급 배우인 닭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평범한 상차림에 불과한 김치와 다대기가 신스틸러로 등장한다. 이런 맛의 반전이 즐겁다. (사진: 윤준식 기자)

 

이 즈음 기다리던 손님이 오셨다. 각자의 일 이야기, 사는 이야기 빈 소주병은 점점 늘어만 간다. 뭘 더 시키기도 애매하고, 더 먹기도 애매하다. 이럴 때 지원군의 힘이 필요하다.“여기요, 칼국수 좀 넣어주세요”칼국수가 투척된다. 맛있다. 이후 빈 병 3개가 더 추가된 것은 안 비밀.

 

닭한마리와 함께하는 내내 미아삼거리 맛집과 미아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골고루 들을 수 있었다. 오래 된 마을, 그 속에 숨어있는 사연과 구석구석 맛집의 존재는 개구쟁이 시절, 친구들과 함께 옆 동네를 탐험하는 기분을 떠올리게 했다.

 

닭한마리의 묘미는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잘 우려진 닭국물에 칼국수를 즐길 수 있다는 점. 술꾼들에게는 해장을 겸해주는 멋진 안주거리다.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width="550" height="413" /> 닭한마리의 묘미는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잘 우려진 닭국물에 칼국수를 즐길 수 있다는 점. 술꾼들에게는 해장을 겸해주는 멋진 안주거리다. (사진: 윤준식 기자)

 

이날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만취했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대한민국의 부정부패 척결과 민주주의를 위해 소신공양을 감행하신 정원스님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이정환 작가는 정원스님의 뜻을 기리는 시민활동을 하고 있었다.

 

정원스님은 제 11차 촛불집회가 있던 2017년 1월 7일 광화문에서 자신의 몸을 소신공양으로 내어놓으셨다. 진보적 역사의식을 가진 그는 불의에 항거한 승려로 알려져있다. 기이한 행적의 인물로도 알려져 있지만, 그의 행동은 대한민국 역사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나의 죽음이 어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 제도화된 수사로 소신공양을 수식하지 마라. 나는 우주의 원소로 돌아가니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마라!” 정원스님이 남긴 말씀이다.

 

아직도 사바세계는 어수선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는 이들이 출몰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촛불의 의미도 퇴색시키고 있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말라는 정원스님의 메시지는 내 마음 속에서 큰 불꽃, 큰 우주가 되어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인 2017년 2월 17일. 이날이 이정환 작가와의 첫 만남, 미아삼거리 맛집에 대한 첫 경험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인연을 계기로 이정환 작가는 ‘시사N라이프’에 합류했고 사람, 마을, 음식 등을 담아내는 ‘스토리텔링 저널리즘’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미아리_이야기’와 ‘맛따라 사진따라’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미아리_맛집_이야기’는 이정환 작가의 ‘미아리_이야기’와 필자의 새연재 ‘기자의밥’ 사이의 스핀오프로 꾸며집니다. ‘기자의밥’과 함께 격주 간격으로 목요일마다 독자여러분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