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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난 나만 옳지 않다"

시사-N 승인 2018.02.12 10:43 의견 0
어제도 "너만 옳으냐"는 메세지를 받았다. 난 나만 옳지 않다. 그럼 무엇을 위해 쓰는가 오히려 난 내가 옳지 않기에 쓴다. 정직한 자가 옳은거다.

 

새벽기도 후 성도들은 분주하게 출근을 준비하고 일터로 향하는데 다시 이불속으로 가는 내가 싫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무급인데 나는 설교라서() 유급인 것은 공평치 않았다. 모두 일하는 낮에 커피숍에서 설교 준비한 답시고 폰놀이를 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하나님이 주셨다고 당당히 쓰는 선교비는 사실 누군가의 피와 땀이 섞여있기에 받을 수 없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서서 일을 하시는 부모님에게도 성전 건축 헌금을 강요하는 건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도심에 보란듯이 건물을 세우고 교회를 세습했다.

 

'목사'는 '먹사'여야 한다며 많이 먹어 배가 좀 나와서 풍채가 있어야 품위가 난다고 배웠다. 목소리는 늘 걸걸해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은혜가 된다고 일부러 쉬게 만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내겐 모두 비상식적인 이야기 였다. "늘 가르치는 말투, 늘 넥타이와 정장차림." 넌 세상인이고 나는 거룩한 사자라는 풍김이 너무 싫었다.

 

수련회 때 목사로 부름받은 사람은 특별하다며 안수 기도를 받았던 것은 알고보니 특별한 게 아니었다. 나는 레위인이 아니었다.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라면 예수가 우리의 머리셨다. 나는 그 몸 중에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는 일원에 불과했다. 공동체를 위해 나를 보내시는 게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나를 부르신 거였다.

 

그리고 레위인에게 연보를 모아 주는 성경의 정신은 이제 가난한 이웃을 향한 예수의 마음으로 그 방향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이 시대의 예수가 원하는 레위인은 우리 주변의 소외받고 가난한 이웃이었다.

 

따라서 "유급이고 무급이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현실에 정직해지고 싶었다. 이유는 내가 제일 부족한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내 자신에게 정직하고 상식적이고 싶었으니까...

 

그저 오늘 하루도 맘껏 땀흘리며 살고 싶을 뿐이다.

 

[이민우 목사 / 세상의 벗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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