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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20)]? 배춧국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2.12 09:39 의견 0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기백엄마가 외출채비를 한다. "어디가" "응. 오늘 쌍둥이네 김장하는 날인데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처음 담는 거라고 도와달라네."전화통화를 하는 폼이 심상찮다. "뭐 갓도 안 사놨다고 그럼 마늘이랑 생강은 있냐 뭐라고 스무 포기를 담는데 그것 밖에 없다고 까나리액젓은 알았어 그거면 충분하고..." 시집생활 24년 만에 이젠 김장 정도는 척척이다.

 

비오는 미아리

(사진: 이정환)

 

광화문 집회에 잠시 다녀왔는데 그때까지도 집에 안 왔다.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만났으니 김장을 마치고 한잔 하겠거니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재촉하신다. "애미한테 전화 좀 걸어봐라. 지금이 몇 신데 아직까지 김장을 담과" "냅두세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으니 술 한잔 마시고 놀다 오겠죠." "그래도 시부모랑 살면서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를 해야 할 거 아니니"어머니의 성화에 문자를 보냈다. '어디야'한참 후에 답이 왔다. '술 마셔' '올 때 소주 한 병만 사와'저녁 열시 반이 조금 넘어서야 발그레한 얼굴로 들어온다. "왜 빈 손이야 문자 못 봤어" "못 봤는데 잠깐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나가더니 편의점에서 소수 한 병을 사온다.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깔깔하다. "배춧국이나 좀 끓여주면 좋겠네." 라고 하니"생 배추는 없고 어제 조금 얻어온 절임 배추가 있으니 그걸로라도 끓여줄까"

 

이젠 배춧국 끓이는 솜씨도 시어머니 솜씨를 따라잡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무 말 안 하시고 맛있게 드신다. 아침상 분위기가 싸할 뻔했는데 배춧국으로 풀렸다. 내 속도 시원하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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