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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21)] 바다이야기와 돼지곱창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2.13 11:22 의견 0
처음엔 황제성이었다.그러다 몇일 뒤 황제성 바로 옆에 큼지막하게 고래이야기가 들어 왔다.그리고 바로 길 건너편에 하나가 더 생기더니 전철역 근처 전자오락실이 또 다른 도박장으로 변했다. 이후 온 동네에 바다이야기와 유사한 형태의 도박장이 세워졌다.

 

미아리에서는 사행성 오락실인 바다이야기가 끝물을 타고 성행했다.신문에 불법이라고 난리가 나기 일보 직전에 문을 연 것이다.그리고 갑자기 동네에 벤츠가 늘었다.우후죽순으로 생기기 시작한 바다이야기류의 도박장들이 들어서면서 벤츠도 함께 늘어난 것이다.동네 주자창이나 골목에 벤츠가 흔하게 눈에 띄었다.

 

동네 소식통인 마포갈비 사장이 '미아리에서 힘 꽤나 쓰는 건달들은 죄다 오락실 사장이다'라고 귀띔을 해준다. 술집이나 커피숍마다 미아리 건달들의 회합이 잦아졌다.한마디로 동네에 휘황찬란한 행색의 사장님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들은 오락실의 실제 소유주는 아니고 도박장에서 잡음이 안 생기게 관리해주는 대가로비싼 외제차와 오락실 지분과 함께 사장 자리를 얻은 거란다.(속칭 바지사장이라고 불리는...) 바다이야기와 비슷한 성인오락실이 많이 생긴 후 그 근처 음식점과 술집들은 호황을 맞았다.밤새 돈을 갖다 바치는 도박꾼의 야식과 속타는 갈증을 가라앉혀 줄소주 장사로 아침까지 밤샘장사를 하게 된 거다.

 

하월곡동이 재개발 되면서 하월곡동에서 미아삼거리로 돼지곱창 가게들에서 풍겨 나오는 기름진 냄새로 온 동네가 느끼해져 갔다.예전에 돼지도축장이 창문여고 건너 편에 있었던 이유로 지금의 래미안 아파트 자리에 돼지곱창집들이 즐비했다.

 

도축장을 청소해준 대가로 돼지내장을 받은 아줌마들이 저녁엔 곱창집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하월곡동이 재개발되면서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가까운 길 건너편 미아리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이때 먼저 미아리에 자리를 잡은 곱창집들은 바다이야기의 호황 덕에 장사가 잘 됐다. 그 중에 눈치가 빠른 집들은 권리금을 톡톡히 챙겨 떠났다. 하지만 뒤늦게 뛰어든 곱창집들은 황제성, 고래이야기 등 도박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쪽박을 차게 됐다.

 

미아삼거리 먹자골목은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고 있다. 처음엔 이십 여 개의 식당이 모여서 시작한 미삼번영회가 이제는 거의 백오십 여 개 이상의 식당이 회원이다.

(사진 : 이정환)

갑자기 늘어났던 벤츠들도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오락실 중에서는황제성이 제일 먼저 문을 닫게 되었다.황제성 자리엔 막걸리 집이 들어섰다.

 

그 막걸리 집은 안주거리가 싼 탓에 요즘 가끔 이용했는데 종업원들이 대충 봐도 황제성에서 일했던 사람들 같다.어째 좀 분위기가 살벌했다.그리고 황제성 옆에 위치했던 고래이야기는 퓨전 해산물 요리집으로 바뀌었다.하지만 생긴지 두 달이 지나서도 파리만 날렸다.

 

제일 늦게 시작한 꺽수네 성인 도박오락실이 제일 치명타를 먹었다.실내 인테리어 중에 도로 문을 닫았으니 말이다.나중에 그 자리엔 고깃집이 들어 섰다.물론 이 집도 어지간히 손님이 없다.대지극장 뒷골목은 먹자골목으로 변해가는 중이다.(한참 전에 쓴 글이라, 지금은 완전한 먹자골목이 형성됐다.)

 

이 글을 쓰다 보니 하월곡동에서 미아리로 이사 온 돼지곱창집 중에 권리금을 제일 많이 챙긴 아주머니가 생각난다.그런 음식점을 할 것 같지 않은 고급스런 외모에 꽤나 미인이었던 그 아주머니는 전라도 군산이 고향인 사람이었는데음식 솜씨가 참 좋았다.

 

한동안 외삼촌과 자주 다니던 그 가게 앞엔 늘 검정색 에쿠스가 한대 주차해 있었다.외삼촌과 나는 그 에쿠스를 단골손님의 자가용으로만 알고 있었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르면 “아줌니, 오늘 영업 일찍 끝내고 노래방이나 갑시다.” 라며 농을 던지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나 우스운 상황인지 모른다.남편이 옆에 있는데도 그런 농담을 아줌마랑 주고 받았으니 말이다.그 검정 에쿠스의 주인은 바로 곱창집 사장의 남편이었던 거다.

 

아무튼 주변 상인들에게 들은 말로 그녀는 미모를 이용해서 단골손님을 순식간에 확보한 후에 비싼 권리금을 받아 넘기고 떠나는 권리금 장사가 직업이라고 한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후 외삼촌과 나는 “참 별스런 직업도 다 있네.” 라며 씁쓸해 했다. 물론 그 가게를 비싼 권리금 주고 들어온 사람들은 몇 개월도 못 가서 가게 문을 닫고 말았다.

 

결국 돈 버는 방법은 사행성 사업과 부동산 그리고 그에 관련한 일들뿐인가 겨우 가게 하나 장만해서 희망차게 시작했다가 미아리를 뜨는 음식점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지금도 미아삼거리 먹자골목엔 한 달이면 두세 개의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가 6개월을 못 버티고 문을 닫는다.그런 집들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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