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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19)] 사진과 제목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2.22 15:58 의견 0

멋진 제목에 이끌려 사진전에 가 봅니다. 그런데 사진과 제목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제목은 크고 근사한데 사진은 작거나, 제목은 작은데 사진의 의미가 큰 전시들을 가끔 보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목은 말이고 사진은 이미지기 때문에 둘을 연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A=A라는 제목의 전시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저널리즘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박종우 선생의 전시 ‘DMZ’전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제목도 DMZ이고 사진도 여지없이 DMZ사진들입니다. 별 설명이 필요 없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비무장지대’의 사진입니다. 사진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말하고 싶으며 ‘관객들이 무엇을 보면 좋겠다’고 하는 부분을 제목에 명확히 드러냈으며 전시에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이런 사진들은 전달을 주목적으로 합니다. 전달이라고 하지만 사진가는 그저 현실을 복사하거나 복제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주관을 가지고 비무장지대를 재해석하게 됩니다.

김홍희 작가 제공

A=A'의 전시 제목도 있습니다. 제목과 사진이 약간 비틀어져 있는 경우이지요. A와 A'는 닮아있지만 다릅니다. 예를 들어 ‘모지웅’의 사진집 ‘서울 2010’s' 같은 경우입니다. 서울의 2010년대를 촬영했지만 어떤 단편을 집요하게 따라 갑니다. 그런데 이 단편이 서울의 2010년대를 직시 하게 합니다. 관객들이 보면 ‘아..... 우리가 사는 현실의 이면에 이런 것이 항상 존재 하는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경우가 A=A'라는 제목과 전시가 성공적으로 연결된 경우입니다.

A=Z의 경우도 있습니다. 사진집 제목과 이미지가 전혀 상관없는 경우인데 엄청난 충격을 주는 경우를 말합니다. 2017년 10월 31일부터 11월 26일까지 북서울 시립미술관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전시를 했습니다. 거기에 출품한 ‘최치권’ 작가의 사진 ‘대한민국전도’가 이에 해당 합니다. 대한민국지도라는 제목을 걸어 놓고 지도 사진은 한 장도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지도 한 장이 나오지 않는 사진에 왜 ‘대한민국전도’라는 지도의 이름을 붙였을까 여기에 이 사진집의 폭발력과 묘미가 있습니다. 이 사진집에는 일그러진 초상과 아무렇게나 버려져있는 것들과 제 구실을 못하는 것들이 중첩해서 등장 합니다. 그리고 그 사진집의 제일 첫 페이지는 이 사진집 전체의 의도를 암시하든 거친 바다 사진이 등장 합니다.

세월호 이후 우리에게 정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진 국민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자식을 키우는 아비로써 그 한 해 몸과 마음이 아파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런 심정을 표현한 것이 바로 최치권의 ‘대한민국전도’입니다. 제목과 이미지는 서로를 전혀 설명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뭔가를 딱하고 눈치 채는 순간 우리가 답답해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무력하기 그지없는 자신과 만나게 됩니다. 개인의 좌절이 사회적 좌절로 확장되고 개인의 분노가 사회적 분노로 확장 되게 만드는 이상한 힘. 이것이 바로 최치권이 노리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선수 중의 선수의 작품이지요. 사진을 가지고 놀고 그것으로 말하고 그 말을 사람들이 논리와 감성을 통해 수긍하게 만들면서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선수들의 행위 아니겠습니까

사진을 소설처럼 두 개의 플롯으로 흘려 사진전을 낸 작품집도 있습니다. ‘테마 파크’라는 제목의 사진집은 동물원의 동물들과 샐러리맨이 한 권의 사진집에 중첩되어 실려있습니다. 한없는 절망을 느끼는 우리에 갇힌 동물이 등장하면 거기에 등가의 샐러리맨 이미지가 등장 합니다. 이 둘은 연속적으로 중첩되고 병립하듯이 반복 됩니다. 저는 이 사진집을 보면서 한없는 절망과 유한존재에 대한 더없는 연민을 느꼈습니다.

세계의 사진사 중에 두 개의 플롯을 동시에 흐르게 한 사진집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직 한국의 사진가 ‘서준영’의 ‘테마 파크’에서만 보았습니다. 한국 사회의 사진 능력도 이만큼 성장했고 세계를 향해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할 만한 수준에 와 있습니다. 이전의 우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진계는 밖으로만 눈을 돌리고 안쪽의 사정을 무시 합니다. 애처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모두가 하나 같이 호구지책으로 사진을 하기 때문입니다.

호구지책을 넘어 하나의 문화 운동으로 이념의 빗장을 여는 위대한 작업으로 우리를 돌아보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비평가나 큐레이터들은 이런 요소들의 진가를 알아보고 빛을 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이 갑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목은 전시 전체의 드러난 의미와 숨겨진 의미 모두를 엿보게 하는 ‘턴키’에 해당 합니다. 이 키를 제대로 준비해 두지 않으면 관객을 절대 사진전의 의미를 읽어내지 못 합니다. 도무지 배려가 없는 사진전이 되겠지요.

좋은 제목은 반드시 기의와 기표가 함께 합니다. 기의와 기표가 동시에 존재하는 제목. 여러분들이 궁리해서 찾아야 할 자신들의 사진전의 숙제이기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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