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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20)] 전시와 작가노트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2.23 13:24 의견 0

작가노트는 전시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에도 항상 등장하는 소중한 자기 소개서입니다. 작가노트에는 작가의 내밀한 능력이 드러나게 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노트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치밀한 구성과 작업을 하게 된 동기, 제작 방향을 설정하게 된 배경과 사유 과정 등을 감성이 풍부한 언어를 빌어 논리적인 개념 풀이를 기록합니다.

전시장에 가보면 작가노트가 걸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작품을 보고 작품이 뭔가 대단한 의미를 가지거나 감동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작가노트를 보는 순간 완전히 실망하게 되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작가가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지적 수준이 형편없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완전히 망치는 경우를 허다히 봤죠.

작가 노트는 그 작가가 지적 소비를 어떻게 하는지 한 눈에 알려주는 논리적인 글입니다. 그런데 멋진 작품을 전시하고도 논리성이 결여되고 장구한 자기 감상문 같은 하찮은 글로 자신의 작품을 완전히 망쳐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비평가들도 작품전에 왔다가 실망 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을까요

문법도 틀리고 앞뒤가 이어지지 않는 정체불명의 글쓰기는 작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작가는 말을 아끼듯 글도 아껴야 합니다. 작가는 말과 글을 아낀 뒤에 난잡하지 않고 정교하며 압축된 글쓰기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신의 깊은 사유를 드러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의 예술적, 창의적 무식을 송두리째 드러내게 됩니다.

모든 작가들이 문학을 하는 사람처럼 미려한 글을 쓰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작가의 말이나 글을 통해 그 사람의 지적, 심적 깊이를 가늠 합니다. 작품과 동떨어지고 말이 되지 않는 글을 써 보이는 작가를 누가 깊이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김홍희 작가 제공

작가 노트를 꼭 이렇게 써야 한다는 기준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이렇게 쓰면 누구나 쉽게 작가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표준 같은 것은 있습니다. 대단히 상식적인 포맷입니다. 저는 글을 통해 제 작업 행위를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 때 작가 노트를 아예 안 쓰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비평가의 힘을 빌려 비평을 받아 그 글만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한 행위를 작가가 항상 이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면서 개념이 정리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럴 경우 무리하게 작가 노트를 써서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릴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무르익어 스스로 말 하고 싶지 않아도 넘쳐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기다려야 합니다. 작품 발표도 함께 기다려야 하지요. 그렇지만 대개의 작가들은 서둘러 발표를 하고 생각이 익기도 전에 작가 노트를 써서 스스로를 망칩니다.

이럴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훌륭한 비평가와 마주 앉아 자신의 작업에 대한 담소를 나누면서 생각을 정리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물론 선배나 선생님과 함께 그런 시간을 가지면서 스스로 개념 정리를 하거나 도움을 받아 좀 더 단단한 생각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좋겠지요.

여기 두 개의 작가 노트 예제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상식적인 포맷으로 작가 노트 쓰는 법이고 또 하나는 [36.5°]라는 신생아 탄생을 작품으로 승화한 ‘남경숙’ 작가의 탁월한 작가 노트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참고 하시고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글은 제목이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제목이 중요하지요. 그리고 이 작가 노트를 누가 썼는지를 밝히는 작가의 이름이 들어갑니다. 이 제목은 작업 전반을 꽤 뚫는 제목이어야 합니다. 더 보탤 말이 있으면 소제목으로 다음 칸을 메우면 됩니다. 다시 말해 제목과 이름과 소제목 순으로 이어지면 됩니다.

작품을 문자로 풀어내는 중요한 곳이 바로 세 번째입니다. 전문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작업 동기, 제작 방향을 설정하게 된 배경과 사유 과정의 형상화 등을 감성이 풍부한 언어로 논리적으로 전개해야 합니다. 쉽지 않고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야 말로 작가가 자신의 논리로 작업을 하는지 남의 이론으로 밥을 먹고 사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함부로 글을 쓰거나 깐죽거릴 여유가 없는 곳이지요. 너무 길지 않고 너무 짧지 않은 A4 한 장 정도에 자신의 생각을 압축해서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지하고 깊어야 합니다.뿐만 아니라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을 경우에는 그 작품을 설명하는 새로운 언어도 함께 창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때 새로 창조해 낸 말을 이전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것을 쓰면 좋습니다.

그리고 네 번 째는 자신의 다양한 수상 경력이나 전시 경력 등을 넣어 자신의 과거사를 소개 합니다. 현재의 작품이 어떤 경로를 통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것은 도식적이고 역사적인 것이니 별로 말을 보탤 필요가 없지요.

마지막으로 작품 정보를 넣는 것입니다. 작품의 제작 정보라고도 합니다. 촬영한 년도와 프린트 한 해, 에디션과 프린트 기법 등, 경우에 따라서는 작품의 크기 등을 기재 합니다. 다 작가를 이해하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들입니다. 보아서 알겠지만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본문입니다. 승패는 여기에서 납니다.

아래는 남경숙 작가의 [36.5°]의 작가 노트입니다. 한편의 서사시 같습니다. 작가의 내공을 단번에 알아 볼 수 있는 작가 노트입니다.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모릅니다 어디서 왔는지.나는 모릅니다 어디로 가는지오는 곳도 가는 곳도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는 것을 보았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들은 36도 5부로 왔고 36도 5부를 잃으며 돌아갔습니다.모든 시작은 귀했습니다.모든 끝도 귀할 것입니다. 끝은 시작이 있습니다. 그러니 시작을 보았으면 끝도 본 것입니다.‘36도 5부는 시작만을 말 하지 않습니다.이미 본 끝도 말 합니다.우리는 누구도 자신의 시작을 보지 못합니다.그리고 살아가며 시작도 끝도 직시하지 않습니다. 신의 세계도 사후의 세계도 미래의 세계도 내일의 일도정말 우리는 하나도 알지 못합니다.우리가 참으로 그것을 안다면스스로 내면세계로 침잠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는 동안 ‘삶의 절대성’을 지향할 것이라고 봅니다.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지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태어나, 그리고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에서인간으로서 자존감과 감사한 마음으로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씨는바로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36도 5부’도 바로 그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7년 동안 36도 5부를 촬영했습니다.갈등도 많았고 촬영을 거부당한 적도 많았습니다.그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 또 다른 우주가 탄생할 때마다가슴은 언제나 경이로움에 떨었습니다. 인간 존재의 실체인 생명이 꿈틀거리는 역동의 모습에서‘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생명’ 이라는 절규와 같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생명은 포기하지 않는 끝없는 도전’인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우리는 희망으로 왔고 희망으로 갑니다.모든 미래는 우리 앞에 열려있습니다. 고통의 삶도 그 다함의 죽음도 희망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혹시 ‘35도 5부’를 보고 혐오감을 느꼈다면그것은 순전히 미숙한 솜씨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삶은 너무나 솔직하고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단호하게 시작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밖에 찍을 수 없었습니다.그 고통이 바로 희망이고 희망의 온도는 36도 5부입니다.나는 모릅니다 어디서 왔는지.나는 모릅니다 어디로 가는지. 다만, 고통을 느낄 때 우리가 말 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이라는 것을‘36도 5부’를 통해 배웠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처연한 고통과 희생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탄생의 경이로움을 몸소 실천한이 땅의 모든 위대한 어머니들의값진 희생과 끝없는 사랑에 감사와 찬사를 보냅니다. 2008년 4월 사진가 남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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