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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밥(2)] “내게 ‘파돈(Pardon)’의 추억으로 기억되는 특별한 파돈까스” - 불광역 J&J 돈까스

윤준식 기자 승인 2018.02.22 15:08 | 최종 수정 2020.01.02 02:03 의견 0

“아니, 사람을 왜 여기까지 오라 해요!”

장미대선을 3일 앞둔 2017년 5월 6의 일이다. 오래간만에 P기자와 점심 약속을 잡았는데 불광역으로 오라고 하는 것이다. 종로쯤에서 만나면 서로 편하고 다음 일정 움직이기도 편한데 하필 왜 여기로 오라한 것인지

“하하하, 윤기자가 맛있는거 좋아해서 여기까지 오라 했어요.”
“하여간 맛없으면 진짜 화낼거예요.”

나는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우울해진다. 심할 땐 화도 낸다. 먹는 시간은 나만의 소중한 시간이자 경험이고 스트레스에서 해소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소중한 것을 맛없는 음식에게 방해받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특히 그게 아침이나 점심일 경우에는 이후의 일정을 소화하는데 힘이 나지 않는다.

P기자는 막역한 친구다. 그래서 편하게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맛을 잘 모른다. 이런 남성들이 맛있다고 하는 가게들을 가보면 대부분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곳, 즉 머슴밥을 주는 곳들이다. 불광역에서 만나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약간의 불안감이 생겼다. 여차하면 다른 가게를 가자고 해야겠다.

“어딘데요? 돈까스라면 무슨 기사식당 같은 덴가요?”
“그런 건 아니고요, 맛집인데, 무슨 ‘에스까~~’ 하여튼 달팽이로 만든다는데...”
“예? 뭐라구요? 에스까르고? 동네 식당이?”

에스까르고. 프랑스어로 달팽이. 우리 식으로 따지면 골뱅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동네 돈까스집에서 에스까르고를 낸다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니, 진작 말을 했어야죠. 난 여기까지 와서 무슨 돈까슨가 했네!”

프랑스요리 '에스까르고'.  (출처: 픽사베이)

뒤따르던 내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잰걸음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에스까르고를 먹어본 적은 없다. 프랑스 요리를 즐길만한 여유도 없었다. 사진으로나 보았을 뿐. 그러나 레스토랑도 아닌 동네 돈까스집에서 내는 에스까르고 요리는 어떤 모습,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용감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외쳤다.“사장님, 여기 에스까르고 주세요!”식사하던 손님들이 일시에 나를 주목했다. 사장님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유, 이를 어쩌나. 재료가 없어서 못해요. 다음에 오시면 해드릴게요.”
“아니? 그렇게 잘 팔린다는 이야긴가요?”
“그런게 아니라 찾는 사람이 없어서... 가져다놓으면 우리 식구들이 먹어야 해서....”
“네? 에스까르고를 5천원에 내는데 먹는 사람이 없다구요?”

"에스까르고를 5천원에 낸다고?"  (사진: 윤준식 기자)

솔직히 약간 패닉에 빠졌다. 불광동에서 5천원에 달팽이 요리를 내놓은 이 돈까스집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런데 팔리지도 않는다는 분위기는 뭔가 3초간 혼자만의 미스테리로 생각이 맴돌았다. 아쉬움과 허탈감이 밀려왔다. 갑자기 허기가 심해진다.

“그럼, 아주 특별한 돈까스를 먹고 가게 해주세요.”
“파돈 어떠세요?”
“파돈?”

갑자기 “Pardon”(미안)이라 말하는 듯해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파돈까스요!”
“아! 그거 좋네요.”

파돈을 먹어보기로 했다. 한편 “파돈 둘!”을 외치는 P기자를 위협해 다른 메뉴를 주문하게 했다. 언제 이 먼 곳에 또 와보겠는가 온 김에 2가지 메뉴는 맛보고 가야지.

사장님이 요리를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제서야 오늘 미팅의 목적이 떠올랐다. 맛집 기행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었다. 점심 미팅을 겸해 심각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했던 것이다.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P기자나, 이런저런 경력 끝에 저널리스트를 결심한 나나 각자의 저널리즘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던 터. 게다가 최근 관심갖는 주제가 비슷해 의논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장님 혼자 운영하는 작은 가게다. J&J돈까스.  (사진: 윤준식 기자)

음식을 기다리는 10분 사이 우리는 ‘주빌리은행’의 등장 이후 대두되고 있는 부채탕감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의 ‘롤링주빌리’라는 부채탕감 프로젝트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주빌리’는 기독교인들의 성경에서 ‘희년’이라 부르는 50년마다 한 번 오는 특별한 해를 의미한다.

이 ‘희년’에는 돈이 없어 노예가 된 자를 해방하고, 돈이 없어 포기한 땅을 돌려준다. 50년마다 한 번씩 부채를 탕감하며 잃어버린 모든 권리를 회복시킨 것이다. 이를 ‘희년법’이라고 해 율법으로 지켰다고 한다. ‘희년’을 지킨다는 것은 종교적 행위이면서도 재산권과 인권을 동시에 보장하는 사회적 제도였던 것이다.

양극화가 심해진 상황 속에서 주빌리은행 출범 이후 사회적 반향이 일어났다. 시민단체, 지자체들이 연합해 채권을 매입해 소각하는 일을 실천해 나갔고, 극히 소수이지만 무거운 부채로 희망을 잃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실질적인 정치에도 영향을 끼쳤다. 주빌리은행 활동을 했던 제윤경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어 입법활동을 하게 되었고,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주자로 나선 이재명 시장이 희년사상을 받아들여 ‘지대조세제’를 토대로 하는 대선공약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내겐 우려되는 것이 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구약성서에 명시될 정도로 아주 오래된 율법이자 가르침이지만 현대 기독교인들이 이 ‘희년정신’을 따르고 지키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라.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세상이 아닌가

어렵고 힘든 이웃의 경제적 삶을 지켜주기 위해 부채탕감이 필요하지만 도덕적 해이로 전락하게 내버려둘 수도 없다. 반자본주의 정서로 ‘희년정신’이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정치적 야심을 가진 자로 인해 포퓰리즘으로 둔갑한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취재해나가야 할 과제인 것이다. 나 혼자만의 힘에 부쳐 P기자와 상의를 한 것이다.

기다리던 '파돈'이 나왔다.  (사진: 윤준식 기자)

“맛있게 드세요.”

드디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P기자에게는 소스와 버섯이 토핑된 돈까스가 나왔고(아쉽게도 방문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글을 쓰게 되어 버섯이 토핑된 돈까스의 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파를 금방 썰어 올려서 조금 눈이 매울 거예요.”

파의 향이 짙어 눈물이 살짝 맺힌다. 이 냄새를 맡으니 사소한 욕심이 생겼다.

“‘파돈’은 나중에 먹읍시다.”
“아, 왜 내걸 뺏어먹으려 그래요?”
“파즙이 돈까스로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 먹자구요.”

1년의 시간이 지나 메뉴의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보기에는 '파돈'보다 더 화려하고 풍성하다. 토핑된 버섯과 돈까스를 함께 먹는 식감에서 먹는 즐거움이 컸다.  (사진: 윤준식 기자)

버섯토핑 돈까스는 버섯과 돈까스을 포크로 한 번에 꿰어 먹는 재미와 따로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버섯을 씹을 때의 말캉함과 고기의 질김이 엉켜 씹는 즐거움이 오묘하다. 처음에 베어물 때는 앞니에 걸쳐지지만, 이후 꼭꼭 씹을수록 콘베이어 벨트가 움직이듯 고기는 송곳니 위치에 버섯은 어금니 위치로 옮겨가 혀의 앞 부분과 뒷 부분에 2가지 식재료의 맛이 느껴진다.

제주도산 돼지고기만 쓴다고 하는데 돼지고기의 맛도 좋지만 식감이 더 좋다. 돈까스 밑 작업할 때에 고기를 쾅쾅 두드려줘야 하는데 사장님 혼자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파돈까스에 대한 기대감이 더더욱 커지는 순간이다.

약 5분의 시간이 지났다. 슬슬 파즙이 돈까스에 배지 않았을까포크로 파돈 한 조각을 집어본다. 눅눅해진 돈까스 튀김옷의 느낌이 포크에서 전해진다. 한 입 베어 무니 기대 이상이다. 파의 향, 파의 달콤함, 파의 알싸함. 좋다. 사삭사삭. 입 속에서 파가 씹히는 소리를 확인하는 것도 즐겁다.

한 5분 정도 파즙이 돈까스에 배기를 기다려 먹어보았다. 정말 훌륭하다.  (사진: 윤준식 기자)

우리가 열중해서 먹는 사이 점심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갔고 설거지를 마친 사장님이 커피 2잔을 내려 서비스로 내주셨다.

“이 손님 음식을 먹을 줄 아네!”
“이 친구 맛집 기자예요!”
“왜 이래요 맛집 기사는 쓴 적도 없구만!”
“혹시 알아요? 1년쯤 후에 쓰고 있을지?”

그렇다.1년이 지난 지금 이 기사를 쓰고 있는데, 이 기사를 맛집 기사라고 하면 난 맛집 기자다.

사장님께서 내어주신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종교적 ‘희년정신’이 확장된 사회적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유경제’, ‘지역화폐’ 등 P기자는 자신의 지식을 쏟아놓았다. 함께 공동기획해서 꾸준히 취재하고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나눴다.

아쉬운 점심미팅의 시간이 끝났다. 계산을 하며 사장님께 물었다.

“사장님, 다음에 오면 ‘에스까르고’ 먹어볼 수 있을까요?”
“그게... 재료가...”
“그럼 제가 여기 테이블마다 ‘에스까르고’ 먹겠다는 손님으로 채우면 먹어볼 수 있나요?”
“하하하하하!”

안타깝게도 이날 나눴던 이야기는 이후로 더 진전시킬 수 없었다. 수집한 자료도 있고, 인터뷰도 여러 건 해두었지만, 기사화하지 못했다. 취재와 보도에도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필요하다. 독립 저널리즘의 길은 쉽지 않다. 이런 마이너한 주제를 도와줄 스폰서도 없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필요한 내용이라면 필요한 시기에 꺼낼 수 있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틈나는 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사람을 만나다보면 세상에 이로운 좋은 기사를 써낼 수 있을 것이다.

주빌리은행은 2015년 출범한 이후 시민의 후원금으로 부실채권을 사서 채무자를 구제하는 활동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고 채무자를 위한 활동들을 해나가고 있다. 돌아오는 2월 28일 정기총회를 연다고 한다. 이밖에 ‘희년정신’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는 모든 분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게 되길 바래본다.

알음알음 불광역 인근 맛집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만의 숨은 맛집으로 숨기고 싶은 욕심이 드는 아지트 같은 곳이다.  (사진: 윤준식 기자)

<기자의 밥>은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사람, 발생했던 일에 대한 후일담을 다룬 내용이다. 마치 회식이나 뒷풀이를 하듯, 그 과정에서 먹게 된 음식 이야기와 함께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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