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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 (22)] 작품론과 작가론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2.27 21:19 의견 0

부산에서 활동하시던 최민식 선생님이라고 한국 사진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그 명성을 떨치신 분입니다. 이런 분을 쉽게 만날 수는 없습니다. 불운하던 우리의 시대를 촬영하신 분이자, 한 평생 자신의 사진 철학을 위해 사시다 가신 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선생님에 관한 제대로 된 작가론이나 작품론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한국 사진계의 현실입니다. 비참한 일이지요. 가까운 나라 일본만 해도 비평가나 글을 쓰는 전문가들이 한 사람의 작가를 위해 전문적인 작가론과 작품론을 남깁니다. 이는 사회적 책임이지요. 다른 분야는 몰라도 사진과 관련된 글쓰기 전문가는 자신의 일생의 작업으로 적어도 한 사람의 작가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쉽게도 이런 일은 아직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작가론이란 작품과 관련된 작가의 사진적 일대기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작가의 이름부터 출생, 학력, 경력, 교우관계, 결혼과 이성관계 등 작가의 삶 전반에 관련된 정보와 사진계의 경력 및 활동 등 소급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 작가의 일생을 그려내는 작업을 말합니다.

작품론이란 작가의 작품을 개별적으로 연구하고 비평하는 것을 말합니다. 개별 작품에 대한 사실 내용의 확정 뿐 아니라 그 작가의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참을 찾아내며 작가와 관객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중요한 일을 말 합니다.

김홍희작가 제공

간혹 사진만 보면 되지 작가를 알아서 뭐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작품론만을 중요시 하는 사람입니다. 작가를 보지 않고 작품만으로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읽어내기 어렵다고 주장 하시는 분들은 작가론에 비중을 두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삶 자체가 작품이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삶과 작품이 일치하면 더없이 좋겠다고 생각 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것을 추종하던지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지 종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더 밸런스를 가지는 것은 작가론과 작품론을 함께 취급해야 하겠지만 사람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르고 취향도 다르니까요.

최민식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저에게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습니다. 요즘의 대학 교수들이 당신의 사진을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사진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면서. 저도 이 이야기를 최민식 선생님께 직접 듣고 놀라웠습니다. 교수의 역할이란 학생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내 뱉을 수 있다니!

최민식 선생님께도 돌아 가셨을 때 부산의 국제신문에 조문을 제가 썼습니다. 여기 한 번 전문을 옮겨 보겠습니다.

여기 한 위대한 인간, 최민식 선생이 영면했다. 선생은 아픈시대의 상처를 직시했다. 그리고 우리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여과 없이 진술했다. 그의 셔터 소리는 시대의 비명을 잠재우는 자장가였고, 작품 전시는 이웃의 신음에 귀 기울이게 한 사랑의 역설이었다. 우리는 살이 파이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상처투성이의 시대를 살아왔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생존의 절박함에 시달렸다. 그때 우리 모습은 초췌했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은 그 '때'를 직시했으며 평생 증언해 왔다. 선생의 카메라는 상처받은 자들을 직시했지만, 한 장의 사진은 상처 준 자들을 가리켰다. 선생의 사진집의 사진에는 과거가 찍혀 있지만, 그 과거는 지금을 가리킨다. 선생의 카메라는 고통을 향해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인간 회복에 가 닿아 있었다. 선생은 말했다. "나의 사진은 세상을 향한 발언이며 싸움이다. 그러나 증오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것이다. 나는 사진을 통해 사람에게 사랑과 분노, 그리고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한다." 이 말에는 가슴이 찡하다.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을 믿는다." 선생의 카메라는 삶의 근저를 굳건히 디디고 선 채 삶을 표현했다. 우리는 선생의 사진을 보면 아프고 그래서 선생의 사진은 우리를 심각하게 한다. 대물렌즈는 밖을 향해 있지만, 대안렌즈는 언제나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선생은 알았다. "밖에 아픔이 있다면 내가 아프고 내가 아프면 밖이 아프다"는 것이다. 결국, 선생은 밖과 내가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시대가 아프면 내가 아프고 내가 아프면 시대가 아픈 것을 알았던 선생의 작품에는 상처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현장이 담겼다. 증오는 용기로 바뀌고 분노는 희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더 큰 사랑으로 승화했다. 이것이 최민식 선생이 우리의 아픈 상처와 슬픈 고통을 찍은 연유다. 찬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후대에 그 시대 사람이 어떤 상처와 고통을 딛고 일어섰는지를 증언한 선생은 용기 있는 이였다. 모두가 부정하고 보고 싶지 않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시대를 선생은 투쟁하듯 목격하고 기록했다. 일체의 미사여구가 없는 건조하고 직설적이며 단호한 시선으로. 그런 중에 삶의 환희를 만나기도 하고 애잔한 생의 그림자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이 삶이요, 이것이 생이다. 마치 선생은 자신의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지금 우리는 상처와 고통을 딛고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삶은 언제나 질곡 속에 있다. 고난 속에 용기가 필요할 때, 우리는 선생의 사진을 통해 다시 일어설 것이다. 선생이 찍은 사진은 이제 상처와 고통이 아니라, 그것들을 딛고 일어선 용기 있는 자들의 기록이요, 거침없는 증언으로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덕분에 고난의 시대는 갔습니다. 이제 남은 저희는 희망과 소통과 환희의 시대를 찍게 해 주십시오. 선생님의 영면에 그토록 애타게 앙망하셨던 신의 가호가 함께하시기를 눈물로 기도 올립니다.2013-02-13. 국제신문

제 글을 읽어보면 최민식 선생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 지 알 것입니다. 시대마다 시대의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그 시대를 보아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았다는 말로 선생을 폄하 합니다. 왜냐구요 지금 그들의 옆에서 노닥거리는 인간들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가져야 입에 풀칠하는데 도움이 되니까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미자 선생이 없었으면 조용필 선생도 없고, 조용필 선생이 없었으면 서태지도 없었을 겁니다. 이미자 선생과 조용필 선생과 서태지가 있어서 지금의 K-Pop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 그 시절에 맞는 노래가 있고 가수가 있는 법 아닙니까 한국 사진계 미래에는 좀 더 진솔하게 사진과 예술을 다루는 교수들과 비평가들과 큐레이터들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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