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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 (25)] 소장가와 사진가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3.02 11:12 의견 0

요즘은 비평과 큐레이터를 능가하는 아주 막강한 힘이 등장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소장가입니다. 그것도 그냥 중산층 소장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국의 대표하는 사진가 중에 배병우 선생이 있습니다.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하지요.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배병우 작가의 소나무 사진을 한번쯤 보았을 겁니다. 그의 작품 중에 오름이나 바다 시리즈도 정말 좋은 사진이지만 우리들에게는 소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래 전에 영국에서 전시를 했을 때 배병우 선생이 화장실에 간 사이 엘튼 존이 ‘이 사진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작품이라’고 하며 소나무 사진을 샀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실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배병우 선생이 화장실을 진짜로 가서 그를 못 만났는지는 확인 할 길이 없습니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사진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수없이 팔려 나가게 되었다는 후문입니다. 배병우 하면 소나무로 인식하게 되었지요.

세계 굴지의 기업에는 작품을 구매하는 전담반이 있습니다. 회장이나 사장 직속인 경우도 있고 하나의 팀으로 꾸려져 자신의 회사를 장식하는 일을 전담하는 부서도 있습니다. 여기에 소속된 큐레이터도 막강한 힘을 발휘 합니다. 예를 들어 빌게이츠의 MS사의 작품 구매 전담 큐레이터가 홍콩 아트페어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샀다고 칩시다. 그 작품은 빌게이츠가 직접 산 것도 아니고 MS사의 작품 구매 담당자가 산 것이지요.

그런데 소문은 빌게이츠가 샀다고 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작가의 작품은 어떻게 될까요 작업실에 수년 또는 수 십 년 동안 못 팔고 재어 있던 ‘악성 재고’들이 한 번에 팔려 나갑니다. 뿐만 아니라 제작 주문도 들어옵니다. 작가가 로또 맞은 경우지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 세계의 유명한 미술관에서 적어도 그의 작품을 한 점씩 소장하고 싶어 합니다. 죽을 때까지 제작을 해도 다 공급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예술계에서 가끔 벌어집니다.

김홍희사진작가 제공

한 점에 몇 십억씩 하는 사진 작품이 현실에서 존재 합니다. 이런 일을 기대 하는 것은 나쁘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쉽지 않습니다.

작가는 우선 성실해야 하겠지요. 예를 들어 한 작가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 합니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 합니다. 그러면서 끝없이 작업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팔리지 않습니다. 가끔 전시를 하면 친지들이 한 두 점 사 줍니다. 젊었을 때는 가격이 싸서 이런 저런 친구들이 사 주었지만 나이가 먹어 갈수록 팔리지도 않는 작품은 중견이니 대가니 이러면서 작품 가격도 덩달아 올라갑니다. 결국 60쯤 되면 아무도 작품을 사 주지 않습니다,

친구인 비평가들과 큐레이터들도 함께 늙어 갑니다. 왕년에 유명세를 탄 사람들이었지만 새로운 전투력으로 무장한 젊은 신진들이 대거 해외에서 들어오면서 시장의 흐름이 자연스레 바뀝니다. 제가 아는 작가는 60을 넘기고 70을 넘기고 팔지 못한 자신의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미술관의 소장고는 이미 꽉 찬 상태입니다. 팔리지도 않은 작가의 그림을 미술관은 사실상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미술관에서도 소장 되지 않습니다.

집은 작고 작품을 놓을 곳도 없습니다. 마침내 작가가 죽으면 그의 아들딸이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그 작품들을 몽땅 태워버립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운명은 아닐까요. 섭섭하지만 저는 매일 이런 꿈을 꿉니다. 대개의 작가의 운명은 이렇게 정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앞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죽어라 하는 것이지요. 주위에는 실로 고호들의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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