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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삶의 시작과 끝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다” - 연극 ‘3월의 눈’

김혜령 기자 승인 2018.02.26 18:01 의견 0
2018년 들어 국립극단이 무대에 처음 올린 작품 ‘3월의 눈’. ‘3월의 눈’은 2011년 초연 이래 2012년과 2013년, 2015년 재공연 이후 3년 만의 공연이다. 초연이후 매 공연마다 관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다.

 

올해로 8년이 된 ‘3월의 눈’은 그동안 故 장민호, 故 백성희, 박혜진, 박근형, 변희봉, 신구 등 대배우들이 열연했다. 2018년 공연에서도 역시 오현경, 손숙, 오영수, 정영수 배우가 무대에 서며 인생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3월의 눈’은 봄의 시작을 나타내는 계절 ‘3월’에 겨울을 상징하는 ‘눈’이 맞닿아 인생의 시작과 끝을 담담하게 그려낸 연극이다.

 

서로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장오와 이순

(사진출처 : 국립극단)

 

극 속에는 자극적인 장면이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재개발이 되며 지역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 도시의 문제 등 사회 이슈를 아주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다. 수묵화같은 담담한 색채를 내뿜으며 잔잔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분위기에 매료된 관객들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간다.

 

연극은 오래된 한옥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장오’와 ‘이순’은 이 한옥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노부부다. 그러나 주변이 재개발 되고 근처에 새로운 상권들이 들어서면서 이 집을 팔고 떠날 준비를 하게 된다. 집은 허물어지고 3층짜리 건물이 들어설 계획이며, 집을 판 돈으로 며느리와 손주의 생활에 보태게 된다.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장오’와 ‘이순’의 삶은 분주하지 않다. 문풍지를 새로 바르고, 뜨개질을 하고, 일상의 평온함을 즐기며 오히려 덤덤하게 흘러간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삶의 회한이나 고통이 담겨있지 않다. 그냥 그렇게 삶의 끝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만두를 사들고온 손자며느리 명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오

(사진출처 : 국립극단)

 

이 연극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이다. TV와 영화, 연극계를 넘나들며 그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배우들이 등장하며 극 전반에 풍기는 수묵화의 향기는 더욱 진해진다. 오래된 먹에서 풍기는 묵직한 향으로 인해 관객들은 극 속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순’ 역을 맡은 정영숙 배우는 집에 남아 자신을 그리는 남편의 곁을 지키는 아내의 연기를 선보였다. 오영수 배우 역시 자신의 끝을 준비하며 덤덤한 마무리를 하는 ‘장오’역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두 배우가 만나 뿜어내는 에너지는 명동예술극장을 가득 채우며 관객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학창시절 수능에 나온다고 해서 암기했던 시가 있다. 이형기의 ‘낙화’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집이 해체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이순

(사진출처 : 국립극단)

 

연극 ‘3월의 눈’은 이형기의 시와 유사한 느낌을 낸다. 손자와 며느리를 위해 평생을 살아온 집에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처연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다. 누군가는 그 삶을 후회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움켜 쥔 채 끝까지 발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극중 ‘장오’와 ‘이순’은 끝을 알고 떠나가는 때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그리고 그 모습이 주는 아름다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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