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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27)] 아직도 모를 이야기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2.27 12:29 의견 0
"아주버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오늘 시간 좀 내주세요." 소연이 엄마의 전화다.마침 시내로 외근을 나왔는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소연이 엄마가 근무하는 사무실 근처 커피숍에서 차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소연이 아버지는 내가 친동생처럼 아끼는 후배다. 집도 근처라 우리는 가족끼리도 모임을 자주 갖는 편이다.

 

"무슨 일이에요이따 저녁에 대호랑 같이 동네에서 한 잔 마시며 얘기 나누지...""그럴 형편이 못 되요, 아주버니. 큰 일 났어요."얘긴 즉 슨, 대호가 바람이 났다는 거다. 그것도 내가 잘 아는 동생이랑...

 

"설마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 둘 다 내가 잘 아는데 절대 그럴 친구들이 아닙니다."나는 얼마 전부터 온라인에서 사진을 지도 하기 시작했는데 나한테 사진지도를 받는 부산아가씨 정은이랑 대호가 남들 모르게 만나오고 있었으며 얼마 전부터는 대호가 대놓고 외박을 일삼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니 동네에서 척사대회가 열린다. 머리를 다듬으려 단골미장원에 가는데 미장원 원장의 남편이 이미 얼큰하게 취해서 내게 술을 권한다. "기백아빠 머릿고기에 막걸리 한잔 마시고 가세요"

(사진: 이정환)

 

처음에는 차분하게 그 간의 일을 털어놓던 소연엄마가 본인이 내뱉는 말에 흥분했는지 울고 불고 큰 소리치며 난리가 났다. 커피숍 안에 있던사람들이의아하게쳐다보는 눈길도 부담스러웠고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믿기질 않는 얘기이기에, 히스테릭 하게 큰 소리를 지르는 소연엄마를 겨우 진정 시킨 뒤 '내가 자초지종을 알아보마' 하고 다독인 후 사무실로 올려 보냈다.

 

"대호야, 너 무슨 일 있냐" 일단 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네, 형님이세요 왜요소연엄마가 결국 형님한테 전화 걸었군요""그래 너 몇 시에 시간되냐이따 대지극장 근처에서 잠깐 보자."

 

대호의 말은 소연엄마의 얘기랑 완전 딴판이었다. 소연엄마가 의부증이 있었다는 거다. 얼마 전 나한테 인터넷으로 사진을 배우는 친구들의 전국 모임이 있었는데1박2일의 엠티를 다녀온 후 소연엄마의 의부증이 다시 시작되었단 얘기다.

 

얘길 나누며 살펴보니 대호가 입은 셔츠의 단추가 다 뜯겨있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보이는 대호의 목 부분이 심하게 뜯긴 듯 피 멍까지 들어있었다.

 

"형님, 이런 일 생기면 정말 못 말릴 정도로 힘듭니다."출근할 때도 출근 못 하게 옷을 다 찢고 온몸을 꼬집으며 머리카락의 쥐어 뜯어 난리가 아니라는 얘기다."저, 이젠 이혼할 생각입니다." 대호가 말을 잇는다.그렇게 가까이 지내면서도 처음 듣는 이런 황당한 얘기에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대호야,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내게 힘 든다고 말 한 마디나 하지 그랬냐"

 

"형님 좋지도 않은 집안 얘길 뭐 하러 합니까" 라며 눈물을 글썽인다. 대호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울화가 속에서 치밀어 오른다. 소연이 엄마가 한 성깔 있는 건 진작부터 알았는데 남편에게 그 정도로 심하게 대했던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었기에 나는 더 더욱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 소연이 엄마와 대호를 번갈아 가면서 몇 번을 더 만나고 나서 이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이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는 결론에 다 달았다. 하지만 남인 내가 어찌 이혼을 해라 마라 할 수가 있겠는가

 

어느 날 대호로부터 연락이 왔다. "형님 서류에 도장 찍었습니다." 결국 이혼을 했다는 얘기다.

 

부산에 사는 정은이도 소연이 엄마한테 무척이나 시달렸던 모양이었다. 정은이가 서울에 왔다. 무척이나 수척해진 정은이 얼굴을 보니 괜시리 내가 다 미안해진다. 그 날 우리는 대학로에서 소주를 꽤나 많이 마셨다.그리고 함께 어울렸던 우리 일행은 단체로 대학로 보석불가마사우나에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속이 쓰려 해장국을 먹으러 나가자고 일행들을 깨우는데대호랑 정은이가 보이질 않는다. 처음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그 당시 소연 엄마의 짐작이 다 맞았던 것이다. 지금 정은이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호는 소연엄마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나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내가 이해할 수가 없는 건 정은이는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였고 미모도 상당했으며 부산에서 어느 정도 알아주는 좋은 집안의 외동딸이었는데 유부남인데다가 그리 훌륭한 직업을 갖지도 않은 대호와 왜 사귀었는지, 대호에게 무슨 마력이라도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나와 가끔 얘기를 나누던 정은이는 속이 상당히 깊은 친구였는데 왜 한 가정을 그렇게 풍비박산을 냈는지……

 

지금도 그 때 그 일을 생각하자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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