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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맛집_이야기(2)] “원조 돼지막창의 풍미를 즐기다” - 미삼 먹자골목 내 ‘월곡동 전라도곱창’

윤준식 기자 승인 2018.03.09 23:54 의견 0
시사n라이프에서 연재되고 있는 이정환 작가의 “미아리_이야기”가 벌써 30회를 맞이했다. 이 작가의 또 다른 연재 “맛따라사진따라”도 10회를 넘어섰다. 마침 우리가 서로 인연을 쌓은지 1주년도 되었다. 또한 “미아리_맛집_이야기” 2회차를 쓰려고 하니 미아리에 살지 않는 나에겐 딱히 소재도 없다. 술꾼에게 이보다 더 좋은 핑계가 있을까 이런 대의명분()을 걸고 거국적인 한 잔을 즐기기로 했다.

 

“자네, 돼지막창 먹나”“아유~~~, 없어서 못 먹죠.”

 

먹자골목에서 들어간 골목에 먹자골목이 있었다. 이면도로를 마주 본 점포 전부가 먹는 가게들이다. 경쟁도 치열하니 맛집도 많을 수밖에 없다.

(사진: 윤준식 기자)

 

막창구이는 경상도 지역에서 시작해 전국에 퍼져나간 요리다. 동물의 창자는 유용한 식재료로 부위별로 다양한 요리로 만들어지고 있다. 보통 가장 흔하게 먹게 되는 곱창은 소나 돼지의 작은 창자(소장)다. 대창이라는 것은 큰 창자(대장)를 소재로 한 요리다. 그러나 막창은 좀 다르다. 소막창은 소의 네 번째 위를 말하며, 돼지막창은 창자의 끝 부분인 직장을 말한다.

 

창자의 맨 끝에 위치한 직장은 배설을 위해 변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돼지막창이 돼지의 직장이라는 사실을 알고나면 비위가 상하는 분들도 많다. 이 작가가 막창을 먹을 줄 아냐고 물어보는 이유도 바로 그 것이다. 그러나 돼지막창은 우리 몸에 흡수가 잘 되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부위로 보약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못 먹을 일도 없다. 그리고 막창구이의 고소함을 알게 되면 정말 없어서 못 먹는 요리가 된다.

 

 

월곡동 곱창집의 전통을 이은 '월곡동 전라도곱창'

(사진: 윤준식 기자)

 

앞장 선 이정환 작가가 먹자골목의 사잇길로 들어가더니 골목 안쪽 어딘가로 인도한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월곡동 전라도곱창’이었다. 가게 앞에 서있는 물통현수막이 “미4(미아사거리)에서 최고 맛있는 맛집”이라 선전한다. 막창 사진 옆의 “꼭 먹어봐 막창구이”라는 문구까지 기대감이 살짝 커진다.

 

미아리 55년 터주대감인 이정환 작가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가게 사장님과 인사부터 나눈다. 동네 사람들만의 짧은 대화가 오간다. 오후 5시라 손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젊은 남녀 한 쌍이 벌써부터 막창을 즐기고 있다. 가게 한켠에 있는 그들의 테이블에서 구워진 막창의 꼬소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 나의 기대감이 더 커진다. 식욕도 왕성해진다. 배가 고프다.

 

첫 상차림에 산더미처럼 주는 콩나물무침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개인적으로 콩나물을 너무 좋아해서다.

(사진: 이정환)

 

“막창 2인분 주세요”주문이 들어가니 가게가 부산해진다. 바깥쪽 그릴에선 돼지막창 초벌구이에 들어가고 안쪽 주방에서는 밑반찬을 내어온다고 부산하다. 상차림이 시작된다. 콩나물 무침이 한가득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듬뿍 나오니 기분이 좋다. 그런데 상차림 마지막으로 상 위에 올라온 양념장이 특이하다.

 

“이런 거 첨보지 이게 원래 원조야.”초장 안에 깨알이 잔뜩 들어있다. 몇 알을 집어 씹어 본다.“(그거) 들깨야...”

 

들깨가 들어간 초장. 들깨 특유의 맛도 있지만 입 속에서 깔깔한 촉감을 가미해 부들부들한 막창을 더욱 즐기게 한다.

(사진: 이정환)

 

입 속에 들깨의 고소하고 풋풋한 향이 퍼진다. 처음 맛보는 신기함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막창구이가 빨리 나오면 좋겠다. 어떤 맛일까 속으로 재촉하며 들깨를 초장에 휘휘 섞어넣는다.

 

드디어 기다리던 돼지막창이 나왔다. 막창 사이사이로 양파, 감자, 단호박, 양배추, 깻잎의 다양한 색감이 더 먹음직스럽다. 그 위에 솔솔 뿌려진 들깨가 매력 포인트. 입 속에 군침이 도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초벌구이가 되었기 때문에 사양하지 않고 바로 하나 집어 입 속에 집어넣었다.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사진; 이정환)

 

두꺼운 막창을 씹게 되면 질겅대는 느낌이 오기마련이다. 이곳 ‘월곡동 전라도곱창’은 그런 위화감이 전혀 없다. 잘 구워진군만두의 만두피를 씹는 듯 바사삭 뭉그러지는데 그 식감이 매우 부드럽다. 몇 번 씹으니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좋다.

 

들깨가 들어간 초장에 찍어 먹어보면 어떨까 막창구이에 새콤매콤달콤한 초장이 가미되니 맛이 더욱 오묘해진다. 부드럽기만 한 막창이지만 들깨가 표면에 붙어 입 속 감촉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고 씹힌 들깨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맛과 향이 막창구이의 맛을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딱히 어떤 맛이라 특정할 수는 없기에 이런 미묘한 불규칙함이 즐거움이 된다. 들깨의 텁텁함을 초장이 밀어내기도 하고, 한 잔의 소주가 이 모든 것을 쓸어내리며 맛을 새롭게 한다.

 

들깨를 잘 섞는다 해도 들꺠로 인해 양념의 점도와 분포가 불균등해진다. 불규칙한 맛과 식감을 연출해 예측미묘한 맛의 즐거움을 자아낸다. 이 맛이 재밌다.

(사진: 윤준식 기자)

 

“요 깻잎을 막창 한 가운데 꽂아서 먹어 봐.”아, 그렇군. 그렇게 먹는 방법도 있었다. 깻잎에 싸서 먹거나 같이 집어 곁들여 먹기만 했지, 막창의 구조를 이용해 깻잎을 꽂아 먹는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이참에 먹는 방법 하나를 새로 배운 셈이다.

 

군만두피를 바사삭 씹는 듯한 막창이었는데 여기에 채소의 섬유질이 더해지니 씹는 즐거움과 식감이 배가된다. 똑똑 뜯어지는 듯 하면서도 질긴 깻잎의 질감과 깻잎의 향과 맛이 합해진다. 슬슬 돼지막창이 느끼하게 여겨지던 참이었는데 이거 너무 좋다.

 

깻잎을 심지처럼 박아 넣음으로 씹는 즐거움이 추가된다.

(사진: 윤준식 기자)

 

“여기 깻잎 좀 더 주세요.”역시 나의 신나하는 표정을 읽은 이정환 작가. 사장님도 인심좋게 깻잎을 한 주먹을 듬뿍 넣어준다.

 

“원래 이 돼지막창의 원조가 월곡동이야. 월곡동하면 곱창집으로 유명했지.”아주 오래 전 창문여고 근처에 돼지 도축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일하던 아줌마들이 일 끝나고 돌아가며 곱창이나 막창을 얻어 장사를 시작했던 게 월곡동 곱창골목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도시가 개발되며 곱창골목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곱창집들도 하나 둘 떠나버렸단다. 이제야 미아리 먹자골목 안쪽에 있는 이 가게의 간판에 ‘월곡동’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돼지의 직장이 재료가 되는 막창. 손질에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사진: 윤준식 기자)

 

“‘라도집’이고 ‘홍나미’고 뭐고 다 없어졌어요”지나가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사장님이 탄식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거든다.한편으로는 ‘월곡동 곱창집’의 추억을 가진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60, 70년대 이촌향도 현상에 의해 시골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동네가 사라지고 있다.

 

아래로 오목한 팬에 돼막창을 구우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기름이 고인다. 여기에 마늘을 해 살짝 구워 먹으니 이 또한 기막히다. 마늘 한 종지를 더 달라고 했다. 소주가 절로 넘어간다. 한 병 더 시켜 술잔을 더욱 기울이니 먹는 즐거움,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이어진다.

 

벽면을 가득채운 낙서들. 단골손님들의 흔적은 미아리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이다. 거리는 계속 변해가고 사람들도 떠나고 있다.

(사진: 윤준식 기자)

 

도시재개발, 도시재생, 젠트리피케이션의 결과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것이다. 지주가 아닌 도시서민이 주를 이루는 곳들에 변화가 시작되면 원주민이 사라진다. 삶의 터전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추억이 소멸되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 같은 음식이라도 동네가 바뀌면 맛이 달라진다. 아니 다른 맛으로 느껴진다.

 

이곳 미아리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기억과 추억들이 아롱아롱 모여 도시의 아름다운 미래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연재가 계속될 “미아리_이야기”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크다.

 

이제 2회 째를 맞이한 ‘미아리_맛집_이야기’입니다. 이정환 작가의 연재 ‘미아리_이야기’와 필자의 ‘기자의밥’ 연재 사이의 콜라보레이션 스핀오프로 꾸며집니다. 연재 ‘기자의밥’, 이정환 작가의 또다른 연재 '맛따라사진따라'도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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