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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31)] 돈암동 이야기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3.12 12:36 의견 0
초등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중학교는 버스 타고 15분 거리였다.고등학교는 우리나라에서 해발 고도가 제일 높은 대일고등학교를 다녔다. 정릉산 꼭대기에 위치한 대일고는 거리상 가깝지만 대중교통이 애매했다.

 

버스를 타고 정릉 숭덕초등학교 앞에서 내려 산 꼭대기까지 걸어 다녔는데 1학년 땐 거의 45분을 걸었고, 2학년이 돼서는 35분 정도, 3학년이 되어선 30분 내에 주파를 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적응이 되어 다리가 점점 튼실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대일고 동문회는 산악회가 무척 활성화 되어있다.

 

대학교도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다녔는데 버스로 20분 정도의 거리였다. 늘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만 다닌 이유로 사회에 진출해서도 1시간이 넘는 출근거리는 버거웠다. 집에서 거리가 먼 회사엔 스카우트 제의가 있어도 가질 않았었다. 아니면 회사 근처에 방을 구했고 나중에 사업을 시작해서는 오피스텔 스타일의 주거가 가능한 곳을 구했다.

 

미아리와 학교만 시계불알처럼 왔다 갔다 하던 내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돈암동으로 진출했다. 나름대로 모범생 과에 속했던 내가 소위 논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장강'이라는 중국집에서 미팅을 하고 탕수육과 짬뽕국물에 소주를 마시곤 했다.

 

당시엔 지하철 4호선이 생기기 전이었는데 보문동에 있는 고모님 댁에 놀러 갈 때나, 어쩌다가 시내를 나갈 때 지나치는 돈암동은 미아리 촌놈인 나에게는 늘 동경의 대상인 동네였다. 돈암동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빵집인 태극당이 있었고(미아리에서 제일 큰 빵집인 문화당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보이던 경양식집인 '몽마르쥬'는 대학에 합격하면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돈암동의 뒷골목에 더 화려한 문화가 있는 지는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몽마르쥬는 그리 대단한 곳이 아니었다. 올림피아, 나이트가든, 은하분식, 돈암분식, 한일다방 등 돈암동의 문화가 따로 있었던 거다.

 

남들은 제일 열심히 공부를 하는 시기인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나는 몇몇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당시엔 고3을 포기하고 재수를 할 심산이었다. 처음에 자주 들락거린 곳은 앞에서 말한 장강이란 중국집이다.

 

주로 미팅장소로 이용을 했던 장강은 파티션이 나뉘어져 있고 커튼이 쳐져 있어 밖에서 안이 안 보이기 때문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면서 몰래 소주 몇 잔 마시기 편안한 구조였다.

 

그런 문화에 점점 익숙해진 나는 조금씩 노는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의 생맥주 문화를 따라 하려 전기구이 통닭이 유명한 온달이라는 생맥주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온달은 지금도 성업 중이고 나는 여전히 온달에서 모음을 자주 갖는다. 며칠 전 친한 지인들과 온달에서 한잔 마셨다.

(사진: 이정환)

 

온달은 생맥주를 주문하면 마른안주가 서비스로 나오기 때문에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에게 무척이나 인기가 많은 집이었다. 온달은 전기구이통닭이 전문이었지만 당시 주머니 사정으로는 통닭안주는 꿈도 꾸질 못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온달에서 생맥주 한 잔씩 마시며 노닥거리는데 밖에서 누가 후다닥 들어오며 소리를 지른다.

 

“대일고 출신 있으면 태극당 뒤로 다 나와. **고 애들이랑 한 판 붙었다.”잠시 멍하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쳐나갔다. 물론 손에는 각자 사이다 병이나 생맥주 잔을 하나씩 들고…… 나와 함께 자리에 있던 친구들은 그런 거에 익숙했지만 나는 그런 경험 즉, 패싸움이란 게 처음이었다. 얼떨결에 따라 나가긴 했지만 겁이 나서 오줌을 지릴 뻔 했다.

 

아무튼 우리 테이블만이 아니고 몇 테이블에서 동시에 뛰어 나갔는데 우리가 우르르 몰려가는 걸 본 상대편이 도망을 가면서 사태는 쉽게 정리되었다.

 

나중에 상황을 정리해보니 재수를 하던 대일고 1년 선배들인데 다른 학교 출신들과 시비가 붙었고 수적으로 열세여서 대일고 출신들이 많이 가는 온달에 지원을 요청하러 온 거다. 그만큼 온달은 대일고 출신들의 아지트였다. 그날 그 선배들이 전기구이통닭에 생맥주를 사주는 바람에 온달의 전기통닭을 처음 맛보게 되었다.

 

지금도 동문들이 모인 자리에서 온달 얘기가 나오면 다들 추억 한 자락 씩을 꺼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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