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_이야기(32)] 미아리 무명가수 횟집 주인장
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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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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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곱창구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도 이 집은 자주 가질 않았다. 값도 비싼 편인데다 맛도 별로이기 때문이다.동네 어귀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곳 중 명당 자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조그만 소곱창구이집 아줌마는 음식 솜씨가 좋지 않다.
그리고 소곱창은 무엇보다 청결해야 하는데 어느 때인가 그 곳에서 곱창 구이를 먹다가확 올라오는 포르말린 냄새에 질색을 한 후 더욱 그 집을 피했다.하지만 내가 안 간다고 장사가 잘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 아닌가
당시엔 미아리에 하나 밖에 없는 소곱창구이집이라서 이 집은 항상 만원 이었다.나중에 황소곱창 집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랬다. 키가 작달막한 아줌마는 무지 친절하고 말 수완이 좋아 장사를 잘 하는 편이다.내 생각에는 음식보다는 장사수완이 좋아서 손님이 많은 것 같다.
아줌마는 미혼으로 40을 넘겼다.그녀에겐 무명가수 오빠가 한 명 있는데 가게 안에는 온통 자기 오빠의 앨범 홍보 포스터로 도배를 해놓았다.하지만 아무리 봐도 전혀 알지 못하는 가수인 걸 보니 밤무대에서만 노래 부르는 가수인 듯하다.포스터에 적혀있는 노래 제목도 너무 생소하다.
이런 저런 사연이 많은 미아삼거리 먹자골목과 여관골목엔 오늘도 수많은 사연이 탄생한다.
(사진: 이정환)
아무튼 곱창집은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다가 곱창 집 건너편 가게도 인수해서 횟집을 차렸다.그 횟집은 무명가수인 오빠한테 맡겼다. 싸구려 막 횟집인데 목이 좋아서 그런지 그 집도 대박이 났다.아마 그때가 그 아줌마의 제일 행복한 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어느 날 곱창 집 자리에 길 건너에 있던 오빠네 횟집이 이사를 오고 아줌마는 동네에서 안 보이기 시작했다.소문에 의하면 돈을 많이 벌어 외대 앞에 레스토랑을 하나 인수했네 어쩌네 하는 소문이 무성했었는데그 아줌마의 소식을 얼마 전에야 듣게 되었다.
미아삼거리 먹자골목에서 제일 장사가 잘 되는 음식점은 벼락화로구이다.목이 좋고 음식도 좋은 편이라 항상 손님으로 북적거린다.미아삼거리 먹자 골목 안에서 조그만 음식점을 차리는 사람들은 벼락화로구이에서 찬모 생활로 경험을 쌓고 식당을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식당 손님 대접하는 요령이나 밑반찬 등을 만드는 것 등을 익히기엔 그 집이 제일 좋아서 그런 듯하다.소곱창집 아줌마도 곱창 집을 차리기 전엔 거기서 일했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그 아줌마 얘길 해준 사람은 새로 생긴 돼지곱창집 주인이었는데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우연히 그 소곱창집 아줌마 얘기가 나왔고 둘이 같이 벼락화로구이에서일했던 친구 사이라며 곱창 집 아줌마 소식을 말해주는 거다.
“그 친구요 죽었어요. 불쌍하죠. 정말 불쌍한 친구에요” 눈물까지 글썽인다.“지금 횟집 하는 오빠만 좋은 일 시켜주고 간 거죠. 뭐”
아줌마는 처녀적부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단다.자신은 겨우 국민학교만 마쳤는데 온갖 힘든 일을 해가면서 오빠 뒷바라지하고 집안을 보살피느라 혼기마저 놓치고 일을 했고가수 지망생인 오빠의 앨범 제작비, 오빠네 가족 생활비까지 모두 다 본인이 벌어서 부담하면서 살았단다.부지런하고 열심인 탓에 곱창 집을 열게 되었고 곱창 집으로 돈을 벌어서 오빠한테 횟집을 차려줬는데횟집이 너무 장사가 잘 되니까 횟집이 세 들어 있는 건물주가 자기네가 그 자리에 음식점을 차릴 요량으로가게를 빼라고 했던 모양이다.
소곱창집 아줌마는 권리금도 적지 않게 지불하고 얻어 오빠한테 그냥 줬는데건물주가 권리금도 보상을 해주질 않으며 쫓아낸 거란다.그래도 자기는 남은 돈 몇 푼으로 다시 시작할 요량으로 오빠한테 자기가 운영하던 소곱창집 자리를 횟집으로 양보하고다른 자리를 알아 보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화병을 얻어 죽게 되었단 얘기다.
“오빠가 그러면 안 되는 거죠. 그렇게 고생하면서 자기를 뒷바라지한 동생인데 자기가 다른 자리를 구해보던지,어떤 노력을 했어야지.”라고 말하는 아줌마의 글썽이던 눈물이 닭 똥 같이 흐른다.“그런 일이 있었군요. 난 또 외대 앞에서 레스토랑 차렸단 얘기만 들었죠.”“맞아요. 외대 앞에 선술집이라도 차리려 했었죠. 그런데 사기를 당해서 그나마 알량하게 몇 푼 남은 돈마저 다 날렸죠.그러고 나서 바로 화병으로 죽은 거에요.”그 얘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속이 답답하던지 나까지 눈물이 날 뻔 했다.
얼마 전 외삼촌과 가을 전어가 맛있다고 해서 오빠란 사람이 운영하는 횟집에서 전어 회를 먹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동생과는 다르게 불친절하고 참 성미 고약하더라.아직도 그 횟집에는 앨범 홍보용 포스터가 붙어있다.
"동생을 그렇게 보내고 장사하니 좋냐 새끼야"’ 라는 말이 목에서 스멀거려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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