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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골목은살아있다(1)] “왜 골목인가?”

윤준식 기자 승인 2018.03.14 21:44 | 최종 수정 2020.05.21 20:45 의견 0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연일 대형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 때문에 경기문제를 놓치고 지나치고 있다. 피부로 느끼는 바닥 경기가 심하게 좋지 않다. 돌아다니다보면 지난 12월부터 2월말까지 3개월간 매출이 없다고 호소하는 점포나 업체가 너무 많다. 청년취업이 어렵다고는 하나 실직 후 취업이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중장년층의 취업난도 심각하다. 다들 뭔가 돈이 되는 일을 만들어보려, 동향을 파악해보려 열심히 움직인다. 거래처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어렵고 힘들다는 점만 확인하고 돌아선다.

◇불경기에 영업시간을 단축한 만화카페

최근 공간을 활용한 비즈니스 이야기가 들리고 있어 취재 아이템 발굴 차원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되었다. 그 덕에 오래간만에 동네 만화카페를 찾았다. 이 만화카페는 새벽 1~2까지 영업하며 원거리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을 주 고객으로 하던 곳이다. 그런데 이것저것 물어보니 얼마 전부터 영업시간을 11시까지로 단축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스러워 아르바이트 근무시간을 조정한 후 심야영업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사실 2017년 6,470원에서 2018년 7,530원으로 시간당 인상금액은 1,060원에 불과할 뿐이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한두 명이 교대로 근무하는 동네 만화카페의 상황이라면 하루에 추가로 부담하는 인건비는 1만원 이하, 고작 월간 30만원 정도 뿐이다. 추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영업시간을 단축한 것일까 그렇다면 오히려 영업시간을 늘리는 공격적 영업이 낫지 않을까

◇없는 자끼리의 밥그릇 쟁탈전

만화카페 사장님은 투입 대비 산출의 ‘가성비’를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해도 자신의 능력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고정비용이라는 게 있다. 비용의 폭을 고려해 자기 나름의 구조조정을 감행한 결론이 아르바이트 한 명을 줄이고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최근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자 ‘소득주도 성장론’에 거센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소득주도 성장의 맞고 틀림을 떠나 노동시장이 심하게 양극화되어 있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어떤 해법도 나오지 않는다.

고액연봉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실직현상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중위소득 이상의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문제가 아닌 남의 문제로 왈가왈부할 뿐이다. 지금과 같은 현상은 일시적인 것으로 조금만 참으면 해결될 것처럼 생각한다.

여기저기 백날 시끄럽게 떠들어 대면 뭐하나 실질적으로는 시간당 임금을 계산해 지급하는 소상공인과 그 사업장에서 임금생활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문제 - 부가가치가 낮은 노동을 하고 있는 둘 사이에만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논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편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던 와중에 한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영업시간을 늘려 고용안정을 꾀한다는 이야기가 미담으로 떠올랐다. 다들 그렇게 일자리를 나누고 늘리는 것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논리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쪽은 매출액이 중요하다. 그러나 축소, 또는 적정의 경제를 추구하는 입장에선 매출증대는 달갑지 않다. 매출이 늘어나는 만큼 경비는 더 늘어나고 그 경비를 절감하게 하는 것은 결국 반복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 체인점 입장에선 영업시간을 늘리는 만큼 규모의 매출은 증가하고 시기상 사회적 공헌을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며 광고효과도 발생한다. 그러다 기대한 만큼의 매출이 나오지 않는다면 세간의 눈이 다른 곳으로 돌아간 틈을 타 슬그머니 근무시간을, 그것도 본사방침이 아닌 개별매장 현실에 따른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축소하면 되기 때문이다.

◇골목이 뜬다? 임대료가 뜬다!

이런 가운데 골목이 뜨고 있다. ‘OO길’이 유행이다. 언제 어디부터 시작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2,000년대 중반 서래마을길로 시작해 한류 붐 이후 신사동 가로수길에 관광객들이 몰리며 ‘OO길’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제는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할 정도로 온갖 길이 등장했다. 그런데 뜬다는 골목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임대료 상승. 말이 좋아 상승이지 폭등이다. 200% 이상 인상하는 곳들도 부지기수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란에 ‘건물주’가 들어간다. 조물주보다 건물주가 힘이 세다고 ‘갓물주’라 부르는 시대가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건물주가 돈에 눈이 멀어서 틀리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다. 대부분 이유도 모른 채 건물주의 윤리적 책임만 강조하며 임대료를 낮추라고만 말한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건강한 상식을 망쳐놓아서다. 제대로 된 경제공부가 되지 못한 탓이다.

◇점포는 늘 부족: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 임대료는 상승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경제는 ‘보이지않는 손’에 의해 돌아간다. 즉 수요와 공급의 작용-반작용이 가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창업을 목적으로 알아볼수록 제대로 된 점포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맞닥드린다. 점포공간이 부족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건물을 짓기 시작할 때 주거지부터 만들기 때문이다.

우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야 될 것 아닌가 또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해야 상권이 형성된다.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곳에는 점포가 들어서더라도 독자적인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점포는 늘 부족하다. 취락구조가 취약하면 점포자리는 공실이 되고, 이 공실은 주거로 채워진다. 주거가 늘어나 자연스럽게 소비거점이 생겨 점포가 들어설 여건이 되었을 즈음에는 이미 점포가 들어갈 공간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마을이 희망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OO길’의 등장은 매우 난감스럽다. 막상 ‘OO길’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의 핵심층을 이루고 있는 세입자와 영세상인은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 이들은 임대료가 뜨면 골목을 떠야 한다. 골목은 외지인과 외지상인으로 채워진다. 임대료를 능가하는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아이템들이 골목을 도배하기 시작한다. 어느 틈에 맛있고 저렴하고 재미있던 골목은 비싼데 재미없고 부담스러운 골목으로 추락한다.

정겨워 보이던 이 골목에 옮겨와 살던 사람들은 비싼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한다. 물가는 비싸고, 먹을 데는 없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려면 먼 곳까지 가야하는 등 점점 살기 힘든 골목으로 전락한다. 이제는 놀러오는 외지인도 줄어든다. 버티다 못한 점포들이 하나씩 철수하고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며 골목은 몰락한다. 정겹게 인사하던 터주대감 주민과 점포 상인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은 타인과 타인의 집합체일 뿐이다. 골목은 행정구역 상의 번지 수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희망은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골목과 골목은 공동체가 되며 마을을 이루기 때문이다. 마을을 통해 골목을 바라보면 새로운 시각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간 ‘골목’은 자본의 대상이었다. 자본은 마을과 골목을 분리시키고 소외시켜야 최고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한 대안은 무엇일까 (계속)

▲위 기사는 로컬트렌드 미디어 <비로컬>과 인터넷신문 <시사N라이프>가 공동기획·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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