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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밥(3)] “원래 고르곤졸라 피자는 짜다” 홍대입구역 ‘에이펍 A-PUB’

윤준식 기자 승인 2018.03.15 23:55 | 최종 수정 2020.01.02 02:18 의견 0

“고르곤졸라 피자 좋아하나? (끄덕끄덕) 그럼 제대로 된 맛을 보여주지!”

어쩌다 ‘어쩌다 기자’란 별명이 붙어버린 막내 R기자. 약 1년 전만 해도 기자의 꿈을 꾸지 않았던 친구다. 오늘은 그녀가 어쩌다 기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먹게 된 메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당시 독립미디어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시사N라이프>에 새로운 인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필요한 인재상을 그려봤을 때, 가능하면 기성 미디어에 물들지 않은 사람, 또한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필요했다. 이제 막 사회 문턱에 발을 들여놓는 새내기가 필요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뭔가 다른 시각, 다른 생각, 의문을 제기할 사람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여성이면 더욱 좋겠다. 여성만의 정서와 감수성에 마음을 여는 여린 취재원도 있기 때문이다.

때는 2월의 마지막 금요일로 기억한다. 서로 좋은 장소가 때마침 홍대입구역 근처였다.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홍대 골목이지만 하필이면 불금, 그것도 대학생들의 개강 직전 마지막 불금이었다. 조용히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가는 골목마다 시끌시끌 북적북적한 것이었다. 노브레이크 엔터테인먼트 사장 한민관처럼 요란법석을 떨 게 아니라면 명함을 건네며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냐고 연락해”라고 말하려면 좀 분위기 있는 곳에 가야 대화가 될 것 아닌가

홍대입구역 7번출구로 나와 정면을 바라보면 에이펍이 보인다.  (사진: 윤준식 기자)

마침 한 군데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다. 경의선 책거리 방향 어울마당로 안쪽으로 들어가면 홍대입구역 7번 출구 앞에 작은 휴식공간이 있다. 먹자골목이 끝나는 위치다보니 제법 조용한 곳이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지 2년은 지났는데 가게가 아직도 그곳에 있을 지 걱정이 되었다. 안되면 그 근처 다른 음식점을 들어가면 돼지 하며 대화를 유도하며 자연스럽게 길을 이끌었다. 다행히 저기 멀리 간판이 보인다. 속으로 안도하며 자신감 있게 대사를 던졌다.

“고르곤졸라 피자 좋아하나?”

사실 이곳을 찾게된 것은 나와 같이 맛있는 음식을 밝히는 어느 후배 덕분이다. 처음에 어느 와인바를 들렀다가 괜찮은 곳을 알려주겠다 하여 쫄래쫄래 따라왔던 가게다. 후텁지근한 여름 밤이라 가게 밖에 있던 테이블에 앉아 생맥주를 마시며 더위를 달랬다. 그때 그 후배가 “여기 고르곤졸라 피자가 괜찮아요”라고 하여 맛을 보게 되었다.

오늘의 주인공. 고르곤졸라 피자. 주재료가 고르곤졸라 치즈라 이름붙여진 것이다.  (사진: 윤준식 기자)

그런데 피자가 짰다! 피자라고 해서 기름지고 달기만 한 것이 아니다. 피자 재료 안에도 소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맛을 음미하면 짠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건 진짜 짜다. 정말 짰다. “형, 원래 고르곤졸라 피자는 짠 거예요. 그래서 찍어먹으라고 꿀이 나오는거야!”

사실 고르곤졸라 피자는 여기저기서 많이 먹어 보았다. 하얀 모양이 예쁘기도 하고, 얇아서 씹는 식감도 좋다. 꿀에 찍어먹게 되면 그 달달함이 행복감을 주고, 입 속에서 꿀이 발라진 피자 도우가 끈끈하게 도는 촉감에서 오는 만족감이 크다. 매번 먹었던 고르곤졸라 피자는 심심한 맛이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음식과 같이 곁들여 먹는 즐거움이 있어 부대찌개집이나 짬뽕집에서도 고르곤졸라 피자를 복합메뉴로 내놓기도 한다. 그런데 짜다! 짜단 말이다!

고르곤졸라 피자를 주문하고는 오늘은 특별히 와인을 마셔보자며 메뉴판을 뒤적였다. 짭짤한 피자의 맛을 상상하니 차가운 맥주보다는 시큼하고 떫은 맛이 숨어있는 와인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잠시 후 와인이 먼저 세팅되었다. 이제 슬슬 인재등용에 나서 보자! 그러나 여기서 나의 첫 대사는...

피자의 짠 맛 때문인지 꿀을 발라먹거나 찍어 먹는다. 짠단짠단. 이 맛을 즐기는 것도 묘미. (사진: 윤준식 기자)

“곧 알게 되겠지만, 고르곤졸라 피자는 R이 알고 있는 그런 맛이 아니야...!”

젠장! 나 지금 무슨 이야기하고 있는 거냐? 이야기는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흘러간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피자는 마르가리타 피자인데 이게 어느 공주의 이름이며, 이 피자에 들어간 바질의 녹색, 모짜렐라 치즈의 흰색, 토마토의 적색은 이탈리아 국기의 색상과 같다면서 “마르가리타 피자야 말로 이탈리아 사람들의 혼이 담긴 음식”이라는 썰을 풀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점점 안드로메다로 가는 이야기가 수습이 안 되어 등 뒤에 땀이 송송 맺히기 시작하는데, 때마침 고르곤졸라 피자가 나왔다.

“앗! 정말 짜다! 그런데 마.싯.어.욧!”

어쩌다 기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 R양은 피자를 입에 문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는 그렇게 와인과 고르곤졸라 피자를 즐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허물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고르곤졸라 피자가 짠 것은 당연하다. 고르곤졸라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디 지방의 지명인데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치즈를 의미하기도 한다. 고르곤졸라 치즈는 다른 치즈가 유산균에 의해 발효되는 것과 달리 푸른 곰팡이를 이용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치즈와는 맛과 향이 나는 것이다. 치즈는 그 자체만으로도 염분이 많으니 고르곤졸라 치즈를 많이 넣게 되면 맛이 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꿔말해 그동안 먹어왔던 고르곤졸라 피자는 꿀을 찍어먹는 특징에 초점을 맞췄다. 고르곤졸라 치즈를 극소량만 넣어 가벼운 향취만 즐기게 했다. 그러나 이 가게는 맛을 두텁게 내려고 노력했다.

짭짤한 고르곤졸라 피자와 꿀의 단짠단짠 앙상블도 좋지만, 쌉싸롬한 와인도 잘 어울린다.  (사진: 윤준식 기자)

고르곤졸라 피자와 와인 한 병이 거의 사라질 무렵, 갑자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대학에 재학중인 J양으로부터의 연락이다. 언제고 홍대 근처에 오면 서로 연락해 만나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오늘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 초대해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 해졌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배고프다는 J양의 말도 있었고 뭔가 더 맛을 보고 싶은 욕심에 이번엔 루꼴라 피자를 주문했다. 와인도 더 주문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루꼴라는 이탈리아 요리에 많이 쓰이는 채소라고 한다. 채소들이 다 그렇지만 씹으면 쌉싸롬한 맛이 난다. 그러나 루꼴라는 씹는 식감이 부드럽고 씹을 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일설에 따르면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두 여인들, 낯가림까지 있다던 사람들이 루꼴라 피자로 금새 대동단결해 버린다. 와인 한 병이 금방 사라져버렸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먹는 채소 루꼴라를 토핑으로 한 루꼴라 피자. 루꼴라의 고소한 맛을 즐겨보자.  (사진: 윤준식 기자)

“그런데 기자가 되면 맨날 이런 거 먹고 기사로 써야 하나요?”

으이그...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건 내 취미란 말이다. 썰로 풀어놓은 이상한 지식들은 취재한 내용이 아니라 나의 덕질이란 말이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먹는 것을 가지고 글을 써내고 있지만....

어쨌거나 고르곤졸라 피자를 먹다가 어쩌다 기자가 된 R기자. 그 후로 1년의 시간을 거치며 잘 성장하고 있다. 언젠가 자신만의 저널리즘을 관철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피자와 와인을 즐기다보니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문화의 핵심은 음식이 아닐까?  (사진: 윤준식 기자)

<기자의 밥>은 취재과정에서 만났던 사람, 발생했던 일에 대한 후일담을 다룬 내용이다. 마치 회식이나 뒷풀이를 하듯, 그 과정에서 먹게 된 음식 이야기와 함께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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