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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윤이상, 그 뿌리를 만나다!"

윤준식 기자 승인 2018.03.17 15:03 의견 0
지난 2월 23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특별한 음악회 “윤이상, 그 뿌리를 만나다!”가 국립국악당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공연은 윤이상의 음악과 그의 음악에 영감을 주었던 우리 음악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윤이상의 대표작인 ‘예악(Reak)’과 ‘무악(Muak)’, 그리고 그 곡들의 토대가 된 ‘종묘제례악’, ‘수제천’, ‘춘앵전’이 교차연주된다. 지금까지 대규모 악단의 교차연주가 시도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는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음악회가 아니라면 생각할 수 없는 독창적인 공연이라 여겨졌다. 아니나 다를까 음악팬들은 전석매진으로 화답했다.

 

(국립국악원 제공)

 

♣ 일반인에게 어려운 현대음악

 

윤이상의 음악은 쉽지 않다. 유명한 음악가의 작품이라고 아무 생각없이 덤벼들면 기괴하기 짝이 없다. 바이올린과 첼로 등의 현악기는 이잉이잉, 끼잉끼잉 울어대고, 플릇과 오보에 등의 관악기는 뿌웅우웅하며 심사를 불편하게 한다. 불규칙적인 타악기의 타격은 애매한 긴장감을 연출한다. 오케스트라를 대하며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떠올렸던지라 “아니 이것도 음악이냐”라고 외치고 싶게 만든다.

 

사실 이건 윤이상의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음악이라 부르는 음악이 이렇다. 그리고 생각보다 익숙한 음악이다. SF영화나 공포영화의 배경음악으로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전통음악 ‘클래식’이라 하면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을 떠올리지만, 그 음악이 20세기로 접어들며 새로운 형식을 갖게 된 것이다.

 

19세기 후기 낭만파 이후 음악에서 인상주의와 표현주의가 시작되며 우리가 알고 있던 ‘클래식’의 틀이 깨지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12음기법, 전위음악 등의 용어가 등장할 때 즈음이 되며 기존의 ‘클래식’과 다른 음악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음악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이런 문예사조를 들먹여가며 음악을 연구하지는 않는다. 음악은 예술 그 자체의 가치를 갖고 있지만 감정과 정서를 위한 소비재이기도 해서다.

 

사실 일반인들이 현대음악을 접할 때 기괴함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이유는 SF영화, 공포영화의 잔상이 뇌리에 박혀있는 탓도 있다. 현대음악의 기법들이 현대인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담고 있다보니 SF영화, 공포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에 좋다. 그런데 거꾸로 공포와 환상의 이미지를 현대음악의 선율에 대입하고 말기에 현대음악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갖게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현대음악을 감상하고 입문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너무나 친절하고 친근한 공연이었다.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고 전통과 현대를 잇는 시도가 음악을 더욱 친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 종묘제례악 vs 예악(Reak)

 

첫 곡은 ‘종묘제례악 보태평’으로 시작했다. 윤이상의 ‘예악(Reak)’이 영향을 받은 음악이다. 알다시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조 선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제사음악으로 유교의 덕목인 효심을 중심으로 음과 양의 조화, 하늘-사람-땅의 조화 등 추상적 의미를 담고 있다.

 

대편성의 국악단의 연주에 맞춰 악장(樂章)이라 부르는 노래가 가미되고 가무도 이루어진다. 느리고 정적인 분위기이지만 미묘한 변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곡이다. 서양음악과 비교하면 딱딱 맞아 떨어지는 리듬은 없다. 그러나 일정한 흐름에 맞춰 가락과 가락이 겹쳐지는 느낌이 신비롭다. 그래서 이런 음악은 잠을 청하기 딱 좋은 음악인 것이다. 상상해보라 이런 음악은 봄날 소풍과 같다. 따뜻한 봄볕 아래 여기저기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같다. 역대 조상과 선왕들의 공덕을 기리는 마음 또한 그렇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https://youtu.be/enUWpN-aoUE

 

반면, ‘예악(Reak)’은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타악기에 공명하듯 등장하는 금관악기는 털끝을 곤두세우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게 한다. 공포영화나 SF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선율이 이어진다. 하지만 종묘제례악을 미리 들어서인지 영화의 한 장면은 머릿 속에서 금새 사라져버린다.

 

앞서 감상했던 종묘제례악을 떠올리며 감상하니 또 다른 바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어쩌면 서양의 벌판이나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이런 느낌이 아닐까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야산이나 동산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바람이다. 현대음악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악기의 연주나 선율이 기괴하다 느낀 것은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폭넓은 표현이었던 것이다.

 

곡의 중반부가 되며 전에는 보지못했던, 바이올린과 첼로의 현을 잡아 뜯는 연주도 등장하지만 낯설음에 시선이 가기 보다는 폭넓은 표현이 나타내는 인상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음악 속에 빠져들어 새로운 세계의 탐색에 열중하려는데 ‘탁! 타닥 탁!’하는 박 소리가 나며 음악이 완결된다. 마지막 클라이막스 없이 이렇게 끝나버렸지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어찌보면 작곡가에 의해 희롱당한 건데 말이다.

 

https://youtu.be/cF_0HhPpiKk

 

♣ 춘앵전, 수제천 vs 무악(Muak)

 

이어 ‘춘앵전’과 ‘수제천’이 연주되었다. ‘춘앵전’은 노래하는 꾀꼬리를 춤으로 표현한 춤곡이자 무용이다. 시작은 느리지만 서서히 빨라지며 정(靜)에서 동(動)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꾀꼬리를 형상화한 노란 옷을 입은 무희가 등장해 시선을 집중시킨다.

 

곡이 시작할 때는 가만히 서있는 듯하여 한 송이 노란 꽃으로만 보이던 무희가 곡의 진행에 따라 움직임을 빨리해가자, 노래하며 폴짝거리는 꾀꼬리로 변화해 간다. 궁중에서의 공연을 전제로 한 음악이라 정숙하고 절제되면서도 요염하고 도발적이다. 여인의 아름다움과 꾀꼬리의 생명력이 압축되어 담겨져 있다.

 

‘수제천’ 또한 궁중음악의 대표곡이다. 궁중 행사에서 임금과 신하가 절을 하고 예를 갖추는 의례에 사용하던 곡이다. 곡의 특징이자 재미는 관악부에서 저음에서부터 쭈욱 밀어내는 가락을 메기면 현악이 이를 받아 이어가고 자연스럽게 현악과 관악이 합주한다는 것이다. 마치 바닷가를 거닐다 파도가 밀려와 부서질 때 반대편에서 바람이 후욱 밀려오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서로 예를 주고 받는 것도 이런 자연의 조화와 관련있으리라...

 

https://youtu.be/Kj1ITnoUor4

 

윤이상의 ‘무악(Muak)’은 이런 요소들을 이어받는다. ‘춘앵전’처럼 부드럽고 발랄하게 시작해 ‘수제천’에서처럼 관악과 현악이 서로 메기고 받으며 곡을 전개해 간다. ‘춘앵전’의 대금과 피리 소리와 ‘무악(Muak)’ 속 플릇과 오보에의 소리가 닮았다. 에엥에엥, 지잉지잉하며 저음에서 고음으로 음을 걸치는 선율에서 ‘춘앵전’의 소재인 꾀꼬리가 상상된다고 하면 지나친 착각일까

 

이렇게 국립국악원 정악단, 무용단, 성시연이 지휘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교차연주는 이색적이고 새로운 시도이면서도 윤이상을 재조명하는 것은 물론 현대음악을 쉽게 이해하게 만들어주었다. 무엇보다 윤이상의 뿌리이자 우리의 뿌리인 전통음악의 탁월함을 깨닫게 하는 자리가 되어주었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자주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든다.

 

https://youtu.be/e1Z4Ix6rMxM

 

♣ 드디어 고국에 돌아온 윤이상

 

지난 2017년은 윤이상 탄생 100주년으로 윤이상과 그의 음악이 재조명되고 연주되었던 해다. 이를 기념해 윤이상의 귀향을 꾀하는 움직임에 힘이 실렸다. 윤이상의 아내 이수자 여사의 “통영에 묻히고 싶다던 남편과 함께하기 원한다”는 간절한 염원이 독일 베를린 시와 통영시를 움직였다. 지난 2월 28일 윤이상의 유해가 통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는 3월 30일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과 함께 안장된다. 사후 23년, 고국에서 추방된 지 49년만의 일이다.

 

고향이 너무 그리워 일본에서 떠난 배를 타고 와 통영 앞바다를 바라보며 슬피 통곡했다는 윤이상. 드디어 통영에서 영원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가 남긴 음악이 영원한 꿈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윤이상의 음악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고, 그의 영향을 받은 훌륭한 음악인들이 더욱 많아지길 소망해본다.

 

(국립국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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