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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34)] 오이소박이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3.19 12:56 의견 1
23년 전 잠시 미아리 본가에서 나와서 안암동에서 살 때다. 기백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오이소박이를 담가준다고 부산을 떤다.

 

"어머니가 담가 주실 건데 뭐 하러 수고를 해 배도 부른 사람이..." 당시는 기백이가 한 살이고 기현이를 임신 중일 때다.

 

"어머니에게 전화로 자세히 물어봤어. 어머니가 담근 것보다 더 맛있게 담가 줄게."

 

물론 그 말을 믿진 않았지만 은근히 기대가 컸다. 밤늦게까지 뚝딱거리더니 자정쯤 돼서 그럴싸한 모양의 오이소박이 한 통이 만들어졌다.

 

"내일 아침이면 간이 적당할 거니까 아침밥 맛있게 먹고 출근해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다. 연인이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된 후가 나이가 들며 부부는 친구가 된다.

(사진: 이정환)

 

다음날 아침에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오이소박이가 상 위에 올랐다.

 

"오! 제대로 담궜네"

 

한입을 베어 물었다. 아뿔싸! 소금간이 전혀 안 된 오이소박이다. 게다가 오이 특유의 비릿한 풋냄새가 잔뜩이다. 입에 문 거만 겨우 삼키고 다른 반찬으로 아침을 먹었다.

 

잠시 기백엄마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냉장고 안에 있는 오이소박이 통을 꺼내더니 쓰레기 통 속에 과감하게 던져 버리는 게 아닌가

 

그날 이후로 기백엄마는 적어도 한달 이상 아침밥상을 안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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