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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32)] '재빠른 이미지'와 '결정적 순간'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3.19 23:35 의견 0

‘결정적 순간’ 하면 여러분 누구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떠올릴 것입니다. 이 제목의 사진으로 브레송은 전설이 되었지요. 그런데 혹시 이 결정적 순간의 본래 전시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잘 아는 ‘생 라자즈 기차역’이라는 작품은 당시 사진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남자가 물을 건너 반대편 사다리로 뛰는 장면의 사진입니다. 원래는 이런 사진을 찍기 어려웠으나 라이카의 발전과 필름의 감광 속도의 발달로 얻을 수 있었던 장면입니다. 물론 요즘의 기술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당시로서는 움직임을 재빠르게 잡은 경이로운 이 사진 한 장이 브레송을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지는데 일조를 한 것은 분명 합니다. 요즘의 거리의 스나이퍼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의 일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사진 기술의 발달로 얻어진 것이라 지금도 사진사에 남아 있습니다.

브레송의 ‘생 라자르 기차역’

(김홍희 작가 제공)

그래서 당시 그의 사진전의 제목은 결정적 순간이 아니라 ‘재빠른 이미지’였습니다. 제목이 작가의 의도나 철학이 없는 말 그대로 카메라와 감광 재료의 발전을 힘입어 찍게 된 기능의 의미만 가지고 제목을 정하게 된 것입니다. ‘결정적 순간’과 ‘재빠른 이미지’, 제목이 하늘과 땅 차이지요

만약 지금까지 브레송의 사진전 제목이 ‘재빠른 이미지’였다면 그는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사진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은 미국에서 전시를 하게 되면서입니다. 그 때 그 전시 서문을 미국의 한 주교가 쓰게 되었는데, 그 서문 속에 ‘결정적 순간’이라는 단어가 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제목으로 쓰면서 브레송은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재빠른 이미지로 촌구석에서 사진을 재빠르게만 찍던 기능공 수준의 사진사 브레송을 세계적인 사진가로 키운 것이 바로 이 한 줄의 서문이었던 것이죠.

결정적 순간은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빛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된 순간’을 말 합니다. 이렇게 감성적이고 논리 정연한 말을 통해 브레송은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제목의 힘은 이렇습니다.

제목은 사진집이나 사진전 전체를 통괄하는 턴키라고 말 했습니다. 여기에 기의와 기표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감성적이고 육감적이며 섹시하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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