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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33)] 촬영과 후보정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3.20 11:45 의견 0

사진을 기능적으로 크게 나누면 촬영과 후보정이 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쓴 <나는 사진이다>라는 책에 사진을 찍고 선택하는 과정에 대해 써 두었습니다. 촬영하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찍은 것인가를 궁리하고 사진을 찍을 때는 짐승 같은 본능으로 피사체를 촬영하고 고를 때는 이성의 힘을 빌려 감성과 이성이 교차하는 사진을 고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면 기다리는 것이 바로 후보정입니다. 사람들은 후보정을 등한시 합니다. 촬영은 죽어라 하지만 후보정은 잘 하지 않거나 대충하는 성향들이 있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카메라는 자신이 본 것을 제대로 찍어 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제대로 찍어 주는 카메라를 본 적이 있습니까 최상의 기종이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완벽하게 찍어 주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기계는 세팅된 일정한 전자적 데이터만 찍어 줍니다. 그 다음으로 할 일은 그 사람의 작가적 감성과 철학과 노력과 숙련된 후보정이라는 기능을 통해 한 장의 사진을 완성 합니다.

(김홍희 작가 제공)

제가 어려서 사진을 시작 했을 때 어른들은 ‘사진은 찍는 것이 반, 암실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요즘 말로 바꾸면 ‘촬영이 반, 후보정이 반’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 만큼 후보정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지요.

모니터 속에 있는 것은 아직 사진이 아닙니다. 대개 아마추어들은 모니터 속의 이미지만을 즐기지만 사진은 인화지에 옮겨진 어떤 이미지를 말 합니다. 인화지 위에 올려 지지 않은 것은 아직 사진이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이것이 사진의 상식입니다. 다음 세대에는 모니터의 사진도 사진이라고 작품이라고 인정할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시대가 인정한 것을 함께 따라가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촬영을 한다는 것은 내가 본 무엇인가를 기계적으로 그 이미지를 고정 시키는 것을 말 합니다. 이 행위는 그림의 스케치나 에스키스와 유사 합니다. 그대로 완벽한 사진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그림의 전체의 밑그림을 받아 오는 정도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이 들면 암실이나 후보정은 자연스런 행위가 됩니다.

촬영은 내가 ‘본 것’을 찍어오는 행위가 아닙니다. 촬영은 내가 ‘보려고 한 것’을 찍는 행위입니다. 카메라는 내가 본 것을 찍어주는 기계가 아니니 결국 작업실에 와서 후보정을 통해 내가 ‘보고 싶어 했던’, 또는 ‘보여 주려고 하는’ 어떤 것을 구현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후보정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저는 특별한 HDI 후보정이나 채도가 높은 칼라 후보정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제가 선호하지 않는다고 여러분도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흑백 필름과 슬라이드 필름을 다루어왔던 세대인 저로서는 디지털 컬러가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것이 슬라이드 원고이고 어느 것이 디지털 원고 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디지털이 발달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진을 인화하는 방식과 상식은 오래 전에 배운 것이고 익숙해져있습니다. 새로운 길이 있어도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해 온 관성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게 저의 시대를 상징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과 다른 프린트를 해 내는 것이 당연합니다.

촬영도 그렇지만 후보정은 그 작가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촬영물을 어떻게 프린트 할 것인가는 그 사람의 역사가 결정 합니다. 그 작가의 사회적 환경과 시대적 환경, 그리고 살아 온 내막 등이 알게 모르게 그 작가의 프린트를 좌우 한다는 것이지요. 누구나 하는 상식적인 프린트를 넘어 자기만의 고유한 프리트를 해 내는 것. 이것 또한 촬영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런 작업은 숙련을 요구 합니다. 포토샵의 성능을 이해하고 그것의 가능성과 한계를 완벽히 파악한 사람이 있다면 프린트 처방전을 작성해 맡겨도 좋다는 뜻이지요. 그러지만 이때도 자신이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명확한 자기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 프린트는 프린트 하는 암실맨의 의도만으로 프린트 되고 마니까요.

촬영과 후보정 중 촬영에 치중했다면 둘을 같은 위치로 끌어 올리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후보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포토샵을 다루는 일도 암실에서 사진을 다루는 일 만큼이나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요구합니다. 둘을 함께 익혀서 문무를 겸비하는 것이 사진판의 맹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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