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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36)] 세계와 인식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3.23 11:16 의견 0

1957년 야곱 폰 웩스쿨(Jakob von Vexkll)은 그의 저서 <동물과 인간 세계로의 산책>에서 이 지상이 존재하는 객관적 세계를 ‘벨트(Welt)’라고 하였고, 각각의 동물들이 경험하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현실 세계를 ‘움벨트(Umwelt)’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라는 명제를 풀어 가면서 지상의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각각의 움벨트가 다르며, 어떤 사물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느끼는 감각 세계인 움벨트에 의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뒷받침 하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고양이들을 어두운 방에 22시간 동안 가두어 놓고 하루 2시간만 세로줄만 그려져 있는 방에 풀어 둡니다. 그리고 자기 몸에 있는 무늬를 볼 수 없게 목에는 검은 색 후드를 달아 두었습니다. 이렇게 5개월이 지난 후 고양이들을 1미터 정도 높이의 책상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바닥에는 고양이들이 5개월 동안 보지 못한 ‘가로줄 무늬’를 그어 놓았습니다. 고양이들은 1미터 아래로 뛰어 내리지를 못 합니다. 아무리 사육사가 뛰어내리라고 해도 어쩔 줄 몰라 한다는 실험이었습니다.

이처럼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감각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환경에 따라 감각은 상대적인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내 감각을 절대화 하면 상대를 무시하게 됩니다. 감각은 상대적이고 환경적인 결과물입니다. 나의 감각은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다. 이것이 남을 이해하는 시작이기도 합니다.

(김홍희 작가 제공)

저의 경우 길눈이 특별히 밝은 아이였습니다. 한 밤 중에 불도 없는 골목길을 어머니 손을 잡고 아는 분 집을 다녀왔어도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면 정확하게 그 집을 찾아 갔습니다. 친구들 중에 길눈이 어두운 친구들을 보면 이해하기 앞서 핀잔을 주기 일쑤였었지요.

그런데 50 전후에 이 길눈이 어두워지기 시작 했고 갑자기 어디를 가고자 하면 네비게이션처럼 모의주행이 가능하던 능력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후 저는 길눈이 어둡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핀잔을 주던 자신이 핀잔을 받게 되어 버렸지요. 사람마다 감각뿐 아니라 타고난 능력도 다르다는 것을 완전히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표면적 유사성이라고 합니다. 표면적 유사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과 형태를 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심층적 유사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말 합니다. 인간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심층적 유사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동양과 서양도 다릅니다. 같은 사물을 보아도 동양인은 관계적으로 보고 서양인들은 분석적으로 봅니다. 동양은 관계를 통해 종합적으로 보고 서양은 분류를 통해 분석적으로 봅니다. 동양은 동사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서양은 명사적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사적 사고란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는다’는 관계성, 상호의존성을 존중 합니다. 그러나 서양은 ‘원숭이’, ‘침팬치’ 이런 식으로 외형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사고를 합니다. 동양은 인간(人間)이라고 쓰고 상호의존적인 더불어 사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렇지만 서양은 개체라는 말로 홀로 서 있는 인간의 독립성을 강조 합니다.

여기 세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하나는 플라스틱 원통이고 또 하나는 나무로 만든 원통입니다. 또 하나는 나무로 만든 사각 기둥입니다. 두 개를 묶으라고 하면 동양 사람은 재질이 같은 나무로 만든 원통과 사각 기둥을 묶습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플라스틱 원통과 나무로 만든 원통을 하나로 묶습니다.

이것으로 서양은 외형을 중시하고 동양은 기질, 다른 말로 하면 기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양 사람은 핸섬한 남자를 보고 잘 생겼다고 말 하지만 우리는 인상이 좋다고 말 하는 것이 그 다름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감각체제에서 출발한 인식은 생활의 방식과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대학(大學)에는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

우리는 본다는 말에 세 가지를 사용합니다. 견(見), 시(視), 관(觀)이 그것들입니다. 견(見)은 자기 방식대로 보는 것을 말 합니다. 배울 수 있는 것도 포함 합니다. 견문이라는 말도 이런 경우를 말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 말이 다르고 싸우는 것은 견해 차이 때문이 아닙니까

시(視)는 어느 차원에서 보느냐는 것을 말 합니다. 시각차이지요. 동쪽이냐 서쪽이냐 라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름을 말 합니다. 대단히 주관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관(觀)은 중심에서 보는 것을 말 합니다. 중심에서 보니까 자기의 주관은 없어지고 골고루 치우침이 없이 볼 수 있습니다. 관은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을 말 합니다. 관념도 이런 경우에 해당 합니다.

세계는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안겨 줍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마치 파인더로 당신이 세상을 겨누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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