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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_이야기(36)] 태희엄마와 술친구들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3.22 12:39 의견 0
실내포차 주인 욕쟁이 탱자씨는 천주교 신자다.그녀가 다니는 성당은 하월곡1동에 위치한 하월곡 성당이다.가족이 모두 천주교 신자인 우리집도 하월곡 성당이 본당이다. 사는 집주소와 행정구역은 틀리지만 거리상으로 제일 가까운 성당이기 때문에 미아삼거리에 사는 천주교우들은 대부분 하월곡 성당에 다닌다.

 

탱자씨는 성당 활동에 꽤나 적극적이다.테이블이 4개가 전부인 조그만 탱자씨네 실내포장마차는 하루에 두 테이블 이상은 성당 손님들이 찾아온다.내가 탱자씨네 실내포차에 갈 때면 항상 마주치는 분이 한 분 계신데 그 분도 하월곡 성당에 다니시는 분이다.그분은 매번 하월곡 성당의 교우들과 그곳에서 회합을 갖는다.

 

남편도 없이 어린 아들을 키우며 객지 생활을 하느라 힘든 탱자씨를 위해서일부러 그 집을 이용하는 거다. 조금이라도 더 매상을 올려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또한 탱자씨도 그런 마음 씀씀이에 회답하듯이 “오라버니 오늘은 전어가 물이 안 좋아요. 동태찌게 드세요”라며 잇속을 챙기기보단 다른 손님들과 다르게 더 성심껏 그분을 대한다.

 

단골 손님 중에 또 한 무리는 팽자씨네 가게 골목에서 옷 가게, 시계방, 문구점 등 다른 장사를 하는 부류다.그 중 대장이 태희 엄마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정도 위라는데 동네 나이야 늘 고무줄 나이니까 믿을 건 못 된다. 그녀들은 서너 명이 항상 같이 어울리는데 장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탱자씨네 실내포차가 하루의 회포를 푸는 참새 방앗간 같은 역할을 한다.

 

실내포차주인인 탱자씨와 그녀와 제일 친한 태희엄마. 탱자씨는 3년 전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태희엄마는 가끔 길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한다. "정환씨 한잔 마셔야죠" (사진: 이정환)미아리

 

서로의 단골집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나와 외삼촌과도 서로 아는 체를 하고 지냈다.태희 엄마네 무리는 가족끼리도 잘 뭉친다.그들 가족이 뭉치는 날엔 외삼촌과 나는 제일 구석진 자리에 앉아야만 한다.가게가 워낙 좁아서 그렇다.그들은 서로 생일도 챙겨주고 김장할 때면 품앗이도 해주는 모습이 꽤나 정겹다.특별한 안주거리가 없는 날엔 국수를 사다 끓여 먹고 저녁 식사비라고 탱자씨한테 만원짜리 두어 장 챙겨주면서 어떻게든 매상을 올려주려 하는 모습이 마치 고향의 시골 장터 모습 같다.

 

언젠가 외삼촌과 탱자씨네 집에서 술 한잔 하는데 마침 그 날이 그 멤버들 중 한 명의 생일이었나 보다.그걸 모르는 외삼촌과 나는 소주를 계속 시켜서 먹는데 태희 엄마가 한마디 한다.“이봐요, 손님들, 죄송하지만 오늘은 생일이라 가게 문 좀 일찍 닫고 싶은데 안되겠어요”“아, 그래요 우리가 시간을 많이 끄는 바람에 가게 문도 못 닫고 생일 파티 못하나 보군요. 어디 좋은데 가려나 보죠”내 대답에 미안했는지 태희엄마가 넌지시 한마디 한다.“좋은 데는 아니고, 길 건너 노래방에 갈 건데 같이 가시던지...”마침 외삼촌이 2차로 노래방을 가자고 했는데 잘됐다 싶어 따라 나섰다.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려 스스럼 없이 지내는 걸 보니 나도 이젠 평범한 미아리 아저씨가 다 됐다.

 

그 날 노래방비는 욕쟁이 탱자씨 몫이었다.단골 손님들을 위해 한방 쏜 거라나 뭐라나.'아 씨벌 오징어횟집 사장님인 내가 이 정도는 쏴야지 말이야 안그려 정환씨' 걸진 욕이 절로 나오는 걸 보니 그날 탱자씨는 얼큰하게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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