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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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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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라고 익산에서 놀러 온 이모를 따라 <닥터 지바고>를 보러 스카라극장에 갔다. 다들 아시겠지만 영화 <닥터 지바고>는 런닝타임이 3시간 이상이나 되는 긴 영화다. 마지막 상영시간이 7시부터 였는데 표를 끊은 후 시간이 1시간이나 남았다.
영화시작 전에 저녁을 먹으려 식당을 찾았다. 당시에 고등학교 3학년인 이모나 중학교 2학년인 내가 용돈이 넉넉했을 리가 없었다.
조금 저렴해 보이는 식당을 찾은 게 골목에 눈에 띄는 막국수집이었다. '막'이라는 글자가 왠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주문한 막국수가 나왔는데 지금까지 먹었던 그 어떤 국수와 비교해서 생소한 비쥬얼이었다. 허기졌던 이모와 나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면발의 식감이 독특했다. 국물 또한 처음 맛본 묘한 맛이었다. 게눈 감추 듯 맛있게 한 그릇을 싹 비운 건 허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지난 주말엔 간만에 춘천에 놀러 간 김에 퇴계막국수에 들렀다. 남춘천역 앞 퇴계막국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막국수집 중에 하나다. 거친 면발, 풍부한 육향의 육수, 깔끔한 양념다대기가 일미다.
(사진: 이정환 기자)
문제는 계산을 할 때 생겼다. 우리의 예상치 보다 막국수가 비싸다. 그때까지 국수는 집에서 주로 먹었고 혹은 시장 통에서 파는 싸구려 잔치국수(멸치구수)만을 먹었으니 막국수 값을 알 리가 없었던 거다.
다행히 이를 눈치챈 주인아저씨가 돈을 있는 만큼만 내라고 하신다. 그럼에도 쭈뼛거리는 우리를 보더니 일단 가진 돈을 달란다. 막국수 두 그릇 값에 못 미치는 돈을 지불하니 아저씨가 토큰(당시에 상용하던 버스표) 두 개를 건네 준다.
영화 <닥터 지바고>는 감동적이었다. 그 후로도 <닥터 지바고>가 개봉관에서 상영될 때면 몇 번이고 더 봤다. 그리고 <닥터 지바고>를 다시 볼 때면 그때 그 인심이 훈훈한 막국수집 사장님과 매콤달콤하고 국물이 시원했던 맛있는 막국수가 제일 먼저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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