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미아리_이야기(37)] 미아삼거리 심야식당

이정환 기자 승인 2018.03.23 11:39 의견 0
내겐 드라마 심야식당 같은 포차가 있었다. 메뉴판은 있었지만 그거와는 관계없이 그날 먹고 싶은 안주를 주문하면 옆집 생선가게의 싱싱한 재료나 근처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와서 내가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줬다. (절대로 중요한 식재료를 냉장고 안에 오래 보관하질 않았다.)

 

탱자씨네 포장마차다 간판이 없는 동네 어귀의 실내포차를 나는 그렇게 불렀다. 주인아줌마 이름이 최유자인데, '유자나 탱자나' 에서 따온 이름이다.

 

"조카, 왜 실내포차여 싱싱오징어횟집이라고 부르랑께."나보다 열살 위의 주인 아줌마는 고향이 김제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홀몸으로 외아들 하나를 기르며 살았는데 입담이 걸고 음식솜씨가 좋았다.

 

나로도에서 팬션을 운영중인 새째 외삼촌과 지금은 고인이 된 탱자씨. 탱자씨네 포장마차는 미아삼거리 안동네에서 참새방앗간이었다.

(사진: 이정환)

 

탱자씨네 포차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고 나에겐 참새방앗간이었다.퇴근 길에 혼자 가도 네 테이블 뿐인 좁은 가게엔 잘 아는 동네분들이 자리를 잡고 그날의 피로를 푸는 박카스 같은 집이었다.

 

4년 전 탱자씨가 갑자기 쓰러진 후 탱자씨네 포장마차는 로또복권가게로 바뀌었다.

 

3년 전 일이다.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는데 탱자씨네 단골손님인 택이엄마를 만났다. 뇌암으로 쓰러진 탱자씨가 한 달 전까진 자기를 알아보더니 이젠 아무도 못 알아보고 사경을 헤맨단다.나와 술친구였던 십년 터울의 세째 외삼촌도 탱자씨네 단골이었다. 외삼촌은 얼마 전에 고흥 나로도에 귀촌했다.

 

사람들이 떠나가고 그 빈 자리가 그립다. 오늘 아침엔 특히 더 그렇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