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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3)] 2016년 다보스포럼이 일으킨 조용한 파란(上)

윤준식 기자 승인 2018.03.26 20:50 의견 0

4차 산업혁명 논쟁은 2016년 1월 21~24일 스위스에서 개최된 다보스포럼에서 시작되었다.

다보스포럼은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1971년부터 시작한 국제포럼이다. 다보스포럼은 글로벌 정치, 경제, 사회 어젠다를 제시하고 논의하는 장으로서 발전해 왔다. 이에 따라 전세계 주요인사들이 포럼에 참여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2016년에는 이례적으로 포럼 의장인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발표자로 나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 - 다보스포럼 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연설중인 클라우스 슈밥 WEF 회장(출처: WEF 홈페이지)

클라우스 슈밥은 독특한 인물이다. 학자이자 기업가, 정치인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행정학 석사, 경제학 박사, 공학 박사학위를 가진 통섭형, 융복합형 인물이기에 가능했다. 1971년에 민관협력 국제기구인 세계경제포럼을 창립한 이래 지난 47년간 국제적인 플랫폼을 운영하며 세계경제발전과 국제분쟁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런 그가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외침으로써 전 세계가 들썩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를 미리 쓴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의 자연스런 발전을 바라보며 명명된 것이 아니라 선견자(先見者) 또는 선지자(先知者)의 외침으로 시작되었다는 인위성 때문이다.

원래 ‘산업혁명’이란 말 자체가 역사성이 깃든 용어다. 특정 시기가 지나온 후 어떤 시대를 특정해 지칭할 수 있는 용어다. ‘혁명’이란 것 자체가 시스템을 바꾸는 데 성공한 후에나 존재하는 개념 아닌가 성패의 여부를 모른 채 ‘혁명’이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흔히 ‘산업혁명’으로 알고 있는 ‘1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할 때, 효율적인 동력원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 것이지, 산업혁명을 일으킬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뒤를 이은 2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이미 증기기관의 발명을 통해 인력과 축력, 자연력 이외의 인위적 동력을 만들어낸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이 동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연구와 궁리를 반복하게 된다. 증기기관의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해 사용하기 시작하며 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된다.

이때부터 공장과 공단이 등장하고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통한 대량생산, 분업과 협업, 임노동의 보편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를 보다 후대에 이르러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시절의 산업혁명과 구분하며 ‘2차 산업혁명’이라 명명하게 된 것이다.

체코 소재 현대자동차 공장 생산라인(출처: 영현대 웹사이트)

미래진행형 또는 미래완료형인 ‘4차 산업혁명’

그러나 이런 현상은 3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이르러 조금 바뀌게 된다. 3차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중이던 당시에는 ‘정보화혁명’이란 말이 보편적으로 회자되었다.

90년대 초반 한국을 강타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기억하는가 토플러는 인류가 농경기술을 발견한 ‘제1의 물결’, 산업혁명을 통한 기술혁신을 의미하는 ‘제2의 물결’, 마지막으로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로 인한 ‘제3의 물결’을 언급했다. 당시 90년대 초반에는 현재 진행중인 ‘정보화혁명’을 ‘제3의 물결’과 같은 개념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지식인들 스스로 이 혁명에 동참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었다.

그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앨빈 토플러가 말한 ‘제3의 물결’은 말많았던 정보화혁명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어쩌면 정보화 혁명인 3차 산업혁명을 시작점으로 해서 사물인터넷, 드론, 3D프린터, 가상현실,생명과학 등이 융복합된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시대를 겨냥한 것일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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