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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39)] 사진과 사진행위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3.28 13:05 의견 0

보통 사진이라고 하면 인화지 위에 화학적으로 고정된 어떤 이미지를 말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이것을 사진이라고 말 하는 데는 저도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사진 한 장에는 그 사람의 사상과 철학, 교양과 상식, 취향과 습관, 촬영 버릇까지 다 담기니까요. 뿐만 아니라 사진적 기능의 숙련도도 포함해서 그 사람 자체를 드러냅니다.

그러니 한 장의 사진은 그 사람 자체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으로 이 이야기를 뒤집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이 우리 자신이라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문제를 건드리게 됩니다. 말도 거짓말을 하고 눈을 보고도 거짓말을 하는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사진은 거짓말을 찍을 수는 있으나 감출 수는 없습니다.

사진은 일종의 인생의 거울입니다. 좀 더 크게 말하면 인류의 거울이지요.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있지만 자신의 부조리를 고발하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사진으로 사실을 찍는 것 같지만, 실은 은유를 찍기 때문이지요. 사회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그 은유 속에 자신을 숨겨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만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은 굽히지 않지만 남의 주장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진을 찍는 자신에 대한 진솔한 자세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대단히 현재적인 행위입니다. 찍는 순간은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직 현재만 있습니다. 실로 사진을 찍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그 순간 미러가 업 됩니다. 찍히는 순간이 보이지 않지요. 그 보이지 않는 순간 당신은 무엇을 생각 하십니까

(김홍희 작가 제공)

사진을 오래 찍으면 그 찰나의 순간이 길어집니다. 이런 경험을 해 보신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미러가 업 되는 순간은 탄지의 순간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신 분들이 계시지요. 이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가 어떤 순간 60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하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그런데 저는 미러가 업 되는 순간에 생각이 멈춥니다. 60 평생이 멈추지요. 그러면 찰나의 순간이 길어지면서 저의 인생이 멈추고, 시간이 멈추고, 삶이 멈추고, 생이 멈추고, 시간이 멈추고, 공간이 멈춥니다. 그리고 삶도 죽음도 멈추지요. 그러다가 영영 멈추겠지요.

오래 전 카메라 옵스큐라로 영상을 멈추고 그것을 베끼는 것은 사진이 찍히는 찰나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러나 사진기의 발달로 우리는 베끼지 않고 그대로 이미지를 고정시켜 버리지요. 우리는 근대인들 보다 훨씬 빠를 시간을 살지만, 실은 훨씬 긴 시간을 사는 셈입니다. 선적인 시간이 아니라 체적을 가진 시간을 살지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경험을 합니다.

사진 행위는 삶 그자체입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자신이 풍요로워야 합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수많은 훌륭한 사람들을 촬영해 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훌륭한 사람들은 풍요로웠습니다. 영적 풍요를 누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 왔습니다. 스스로 인생을 즐기고 스스로와 놀아 줄줄 아는 존경스런 존재들을 본 것이지요.

사진을 찍는 행위는 다른 것을 대신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이 말을 피아노를 연주하는 행위는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화가가 캔퍼스를 마주 앉아 붓을 대신 할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말 합니다.

오직 그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진행위입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삶이고 셔터가 끊어지는 길고 긴 순간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 순간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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