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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40)] 사진과 욕망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3.29 13:14 의견 0

가끔 사진이 객관적인 사실을 찍을 수 있느냐는 주제로 담론을 이끌어 갑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사진을 객관적으로 찍을 수 있다. 아니다 사진은 주관적인 결과물이다. 이 두 문제는 오랫동안 사진적 화두의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어느 한 쪽으로 결과가 굳어진 듯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을 욕망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를 일종의 욕망의 표현으로 본다면 거기에는 자의식이 발동 합니다. 따라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행위의 일종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주관적인 욕망이 자연스레 개입하게 됩니다. 이 점 때문에 사진이 개관적이냐 주관적이냐 하는 문제의 해답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촬영은 대상과의 교감입니다. 이 교감은 자신과 일련의 정신적인 관계가 있을 때 발생 합니다. 자신과 아무런 정신적 연고가 없는 대상을 향해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자신과의 교감을 일으키는 대상은 언제가 자신을 투사하는 무엇인 셈이지요.

(김홍희 작가 제공)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촬영된 사진이 스스로 자신의 발로 걸어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양상이 조금 다릅니다. 사진에 대한 기지식과 정보가 없을 경우에는 이 사진은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객관적인 대상으로 남게 됩니다. 보는 관객이 알아서 자신이 대상을 보듯이 사진을 통해 자신을 다시 투사해 내지요.

이 때 그 사진은-기지식과 정보가 없는-스스로는 객관성을 유지하지만 관객을 통해 다시 주관적인 해석물로 둔갑합니다. 사람들의 두뇌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고리 속에 끼워 넣으려고 합니다. 따라서 기지식과 정보가 없는 사진은 관객에 의해 자연스레 왜곡된 채 관객의 이해 속에서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이 촬영의 존재 방식이고 사진의 존재방식입니다. 이것은 언어와도 유사 합니다. 우리가 서로 대화를 하고 있지만 의미는 끝없이 미끄러집니다. 서로의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같은 말을 서로 자신의 욕망에 따라 해석하고 이해 한다는 것이지요. 말도 이럴진대 사진이라는 이미지는 어떻겠습니까

사진이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 한다는 것은 사진의 역할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나 그 기관의 양심을 우리가 믿고 있다는 전제에 의한 것입니다. 총체적으로는 사람의 문제이지요. 이 점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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