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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43)] 신화와 철학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4.06 12:15 의견 0

아주 오래 전의 예술 작품들은 신화를 구현하는 데 자신의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우리가 크게 역사를 나눈다면 그리스·로마 시대, 중세, 르네상스, 근대·현대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로마 시대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다신의 시대였습니다. 수많은 신들이 존재했고 그 신들을 예술작품으로 구현해서 오늘날 까지 남아 있습니다.

중세는 유일신의 시대입니다. 따라서 예술 작품도 유일신을 구현하는데 집중했습니다. 중세의 남아 있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돌아보면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신을 구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수많은 신을 구현하던 당시와는 달리 하나의 신만을 구현하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경전의 결집체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신화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것을 신화라고 부르지 경전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중세 시대의 경전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라틴어로 되어 있는 성경이었지요.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신화를 예술 작품으로 구현하고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예술의 구현체로 성경을 교과서로 삼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르네상스로 넘어 오면서 이러한 일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두 시대는 구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다신이든 유일신이든 신의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신과 더불어 영웅도 예술의 구현체로 오랜 동안 사람들의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홍희 작가 제공

르네상스는 신의 시대가 아니고 인간이 인간에게 눈을 뜬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인간이 예술 작품으로 신을 구현하지 않고 새로운 인간에 대해 구현하고 자 하는 노력이 일어나는 시대이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그리스·로마 신화가 있었고 중세에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르네상스를 거처 근·현대로 넘어 오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구현하기 시작 했을까요

이것은 참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중세에는 성경을 그럼 르네상스는 철학입니다. 인간이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인간 자신에게 눈을 뜨던 시기에 예술 작품을 반영할 수 있는 일련의 신화집이나 성경을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 했는데 그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철학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과학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크게 역사를 나누었을 때 시대마다 주로 다루게 되는 중요한 테마가 있었다고 하면 르네상스 이후는 신화와 성경을 대신해서 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철학이 그리스·로마 시대처럼 다신의 역할을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유파로만 발전하고 않고 수많은 생각의 갈래를 쳐서 수도 없이 많은 철학의 유파를 만들어 냅니다. 마치 중국의 제자백가처럼.

르네상스를 지나 이성중심의 근·현대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수많은 철학들이 발전해 왔습니다. 위에서 이미 말씀 드린 것처럼 오직 유일신만을 구현하던 중세를 지나면서 그리스·로마 시대의 다신의 신들을 예술 작품으로 구현하듯이 다시 철학의 세계로 오면서 우리는 다신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신은 우리의 신들이 아닙니다. 서구에서 발생해 서구의 환경와 시대를 먹고 자란 생각의 덩어리들이지요. 그래서 이것들이 우리에게 생소한 합니다. 그래서 현대 미술이나 근대의 새로운 생각들을 구현한 작품들을 보면 우리는 어리둥절해 집니다. 이 점이 우리가 서구 미술을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으로 작품을 구현하면, 예를 들어 농악을 들으면 저절로 어깨춤이 나오듯이-농악을 들으면서 디스코를 치는 분은 없겠지요-우리는 별무리 없이 우리의 예술 작품에 감동하고 녹아들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역사와 환경이 스며들어 있지 않는 작품을 쉽게 받아들이거나 이해를 한다는 것은 쉬운 노릇이 아니겠지요.

현재 우리는 우리의 사진을 이해하는데 서구의 생각을 빌어 이해합니다. 서구에서 탄생한 사진과 그 시대를 반영하는 물건이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꾸어 보면 사진이나 예술에 대한 생각을 우리식으로 이해하고 우리식으로 발표를 하게 되면 이것 또한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하나 중요한 것은 근·현대 서구 철학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 것이 바로 선불교입니다. 일본이 서구와 교역을 하면서 선불교 문화를 서구 철학자들에게 전하게 되어 우리는 가끔 낯설지 않은 서구의 철학을 접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무엇인가 익숙한 이미지를 만나게 되지요.

그렇다면 우리도 승산이 있습니다. 한국 선불교는 일본과는 달리 그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말들을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불·선에 대한 생각의 고리들을 정리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서구의 생각을 능가하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간 중의 하나는 오래 전 20세기의 석학 토인비가 살아 있을 적에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사건이 무엇이냐고. 그 때 토인비는 아폴로의 달 착륙도 아니고 1, 2차 세계 대전도 아니고 동양의 불교가 서구로 넘어 온 것이라고 말 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각의 틀이 서구로 전해진 것을 20세기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들었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세계가 선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파리나 영국의 카페에서 지식인들이 선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그 대화에 끼이지 못하면 지식인으로써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선의 원형이 한국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주요한 정신세계의 자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세계를 향해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그 새로운 문을 알려 주는 주요한 유산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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