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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45)] 표정과 표정 사이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4.10 12:35 의견 0

보통 잘 찍은 사진이라 하면 반듯하게 구도가 잡히고 흔들리지 않은 사진을 말 합니다. 사람의 경우 표정이 제대로 잡힌 사진을 말 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능 중 하나로 카메라라는 기계의 존재 방식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가 사물을 복사하는데 쓰였듯이 카메라 역시 피사체를 복사하기 위해 탄생한 물건으로만 생각한다면 이 명제는 타당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카메라를 사물을 복사하기 위해서만 쓰지를 않습니다.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해 쓰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사물을 복사하는 행위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넘어 본질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을 표정과 표정 사이라고 저는 말 합니다.

대개 우리는 사물의 용도와 속성을 촬영합니다. 이런 용도에 사진은 가장 적합한 도구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넘어서 사물의 속성을 표현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 합니다. 물론 많은 사진가들이 대형 카메라로 피사체를 촬영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카메라의 기능에 힘입은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카메라의 기능 외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개성을 드러낼 수는 없을까요 이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많은 사진가들의 숙제입니다. 이 때 드러나게 되는 것이 바로 표정과 표정 사이의 촬영입니다.

"‘파브르 곤충기’를 쓴 파브르의 증손자로 세계적인 작가 ‘얀 파브르’입니다. 그의 한국 전시 도록에 쓰인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김홍희 작가 제공)

사물의 존재를 그대로 두지 않고 그것과 교감 또는 대결 구도로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 사물이 열리는 순간을 경험 합니다. 사람의 표정을 두고 말 한다면 평소 우리가 잡고 있는 근육의 움직임은 자신이 보이고 싶어 하는 얼굴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얼굴이 드러나기 직전, 또는 그 얼굴이 사라지고 난 직 후 다시 말해 우리에게 보이고 싶은 얼굴과 얼굴 사이가 바로 표정과 표정 사이가 됩니다.

이 때 그 사람의 진솔한 표정이 드러납니다. 만들어진 또는 만들려고 하는 얼굴이 아니라 긴장과 긴장 사이의 이완이 찍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보통 사물을 보거나 기억할 때 멈추어진 것을 기억 합니다. 사람을 기억할 때 그 사람의 인상을 대체로 기억하지 정확한 얼굴의 형태는 사진이나 멈추어진 이미지로 기억합니다.

비디오나 영화를 보면 흘러가는 영상은 대체로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영상의 특징을 기억하지만 완벽하게 멈추어지지 않은 영상을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지요. 그러니 당연히 사람들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대상의 멈추어진 얼굴을 찍으려고 노력 합니다. 여기가 바로 함정입니다. 대개의 아마추어들이 찍은 사진들은 잘 찍힌 얼굴입니다. 어디하나 손 볼 것이 없는 완벽한 사진이지요. 대개 이런 사진들은 모델도 좋고 사진으로 손색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억 속에 남지 않게 됩니다. 이 말을 좋은 사진으로 뇌에 스크래치를 주지 않는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뇌로 이해가 정확히 되지 않는, 또는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뇌에 스크래치를 주어 잊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 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들은 쉽게 머릿속에서 사라집니다.

정말 좋은 사진은 완벽한 것 같지만 뭔가 모자라는 것 같기도 하고 넘치는 것 같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지적하거나 말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진이 머릿속에 남습니다. 좋은 사진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야 말로 사진의 기본 속성인 완벽한 모사로부터 넘어서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좋은 사진의 길이 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관찰이 중요합니다. 한 순간의 관찰이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과 표정의 변화를 선점해서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 순간에 집중 합니다. 그것보다는 그 순간이 언제 일어나는 지 그 표정과 동작의 관계를 읽어야 하지요. 한 순간의 찰나를 읽어내는 숙련은 그 순간이 발생하는 전후의 과정을 통째로 읽어내는 훈련에 의해 얻어집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물에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사진을 빛과 그림자의 조합으로 찍어냅니다. 움직이지 않는 풍경이나 사물 또한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 드러내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순간의 전후 과정을 읽어내는 습관이 필요하지요. 세상의 모든 것은 관계로 드러납니다. 이것을 잘 이해한다면 하나에만 집중하던 습관을 버리고 관계에 집중하는 진중한 안목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진중한 안목을 가지게 되면 표정과 표정 사이가 촬영에만 쓰이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 대한 깊은 명상도 함께 옵니다. 왜냐하면 사물의 외형이 아니라 그 본질과 인간의 만들어진 사회적 표정만이 아닌 내면이 읽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물과 사람의 존재 방식을 이해하고 되고 좀 더 깊은 세상의 존재 방식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표정과 표정사이,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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