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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작가의 “사진 잘 찍는 법”(47)] 사상(思想)과 지상(指想)

김홍희 사진작가 승인 2018.05.03 09:33 의견 0

47. 사상(思想)과 지상(指想)부산에서 활동하시던 사진가 최민식 선생님께서 살아계실 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사진가는 사상이 있어야 해”라고. 저로서는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하신 말씀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말입니다.

최민식 선생님은 젊어서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부탁으로 가난한 사람을 촬영했습니다. 알로이시오 신부님은 그 사진을 들고 미국으로 가서 한국의 실정을 알리게 되었지요. 아마 그 몇 장의 사진으로 많은 고아들을 도울 수 있었기 때문에 최민식 선생님은 사진의 가치에 대해 눈을 떴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선생님으로 이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것은 아니어서 저의 상상력이 한 몫을 했다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은 평소 일본에 밀항한 후 우연히 간다의 헌 책방에서 스티글리츠가 진행한 ‘인간 가족전’을 보고 충격을 받아 사진을 시작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귀국 후 선생님은 알로이시오 신부님의 부탁으로 고아들을 찍어 사진을 제공했습니다.

김홍희 사진작가 제공

이처럼 한 사람의 사진가가 철학이나 사상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작업을 하면서 가치를 터득하게 되고, 그 여파로 철학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상이라고 하는 말은 다 어떠한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사고나 생각을 말합니다. 철학적으로는 판단, 추리를 거쳐서 생긴 의식의 내용을 뜻하거나 논리적인 정합성을 가진 통일된 판단 체계죠. 대단히 이성적인 활동을 근간으로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사상이 아니리 지상(指想)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지상(指想)이라는 말은 사전에 없습니다. 손가락이라는 신체의 일부가 동물적인 반응 활동을 통해 일관성 있는 창작 활동을 유지하고 작품을 남기는 실천 체계를 말 합니다. 이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목이 말라도 바닷물을 마시면 안 되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독버섯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죽을 줄 알면서도 바닷물도 마시고 독버섯도 먹는다고 합니다. 사진가는 이런 상황이 되면 셔터를 누르느냐 마느냐로 결정 됩니다.

세계 정상의 F1 드라이버가 한 말입니다. 오래 되어서 그의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그가 한 말은 생생히 기억납니다. “대개의 선수들은 헤드 핀의 급커브에서 옆에 차가 따라 붙으면 회전각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 때 엑설레이터를 밟는 인간들이 있다. 나는 그들과 경쟁한다.” 그 일순에 브레이크를 밟느냐 엑설레이터를 밟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 된다는 것이지요.

브레이크를 밟는 선수들은 이미 기선을 놓친 것이고 그들과 경쟁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에 브레이크가 아닌 엘설레이터를 밟는 무모한 인간들과 경쟁합니다.

셔터는 이런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눌리는 것이 아니지요. 오랜 숙련과 훈련을 통해 아니면 태생적으로 손가락이 알아서 누릅니다. 이것을 지상이라고 합니다. 손가락 끝으로 생각하기.

이게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모델을 마주 할 때도 일어나는 일이고, 사건 현장, 상품 촬영, 풍경 등 어느 촬영에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 절정의 순간에 당신의 셔터는 머리로 끊습니까 손가락으로 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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