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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당신이 죽음의 시나리오를 작성한다면? - 연극 '컨설턴트'

김혜령 기자 승인 2018.05.16 13:08 의견 0
자신이 누군가의 목숨에 관여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만일 당신이 생각한 이야기 그대로 누군가가 죽게 된다면 마치 자신이 신이 된 기분이지 않을까 ‘죽음을 설계한다’는 신선한 소재로 대학로를 찾은 연극 ‘컨설턴트’. 극의 이야기 속에는 한 평범한 인간이 자본의 폭력으로 타락해가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이다.

 

타닥타닥. 타자를 치는 소리로 시작하는 연극의 주인공은 바로 작가인 J다. J는 취업에 실패하고 백수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무명 인터넷소설 작가다. 이름 모를 사람에게 의뢰를 받고 정치인의 죽음과 관련한 범죄 소설을 쓴 J. 그는 뉴스를 통해 그가 설계한 대로 죽음을 맞이한 정치인의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죽음을 설계하는 회사에 들어가 인간의 죽음을 설계하는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백수인 J를 하루 아침에 고액의 연봉을 받는 부장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하는 M. 사진은 왼쪽부터 강승호, 고영빈

(나인스토리 제공)

 

살인을 설계하고, 자신이 설계한 죽음이 성공할 때마다 J는 점점 잔혹해진다. 회사를 관리하는 M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J. 자신이 설계한 죽음이 성공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손끝에서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며 인간의 생명에 관여하는 자신을 마치 신처럼 여긴다. 그러나 극의 말미에서 권력의 구조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나약한 인간으로 살아간다.

 

90분동안 극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연극이었다. 무대와 관객석이 가까웠기 때문에 관객들은 배우들과 눈빛, 호흡을 바로 공유했다.

 

주인공 J역을 맡은 주민진은 찌질하고 나약한 인간이 잔혹한 인간으로 변해나가는 과정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아주 나약하고 왜소한 인간부터 잔혹함, 잔인함을 극대화한 인간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선을 소화해냈다.

 

컨설턴트 공연사진 왼쪽부터 디아더 역의 김주일, J역의 주민진 매니저 역의 김나미

(나인스토리 제공)

 

J를 회사에 고용해 관리하며 후반부에 J와 대립각을 세우는 M은 고영빈 배우가 맡아 J에게 냉혹한 세상을 전달하는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 J와 M 사이의 갈등을 빚게 하는 존재 매니저 역에 김나미 배우가 나와 매력적인 매니저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세 사람의 연기가 모여 연극을 긴장감있게 이끄는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극 속에서 J는 인간이 지닌 다양한 모습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취업에 실패해 하루하루 빚으로 허덕이며 살아가는 모습, 갑자기 부와 권력을 손에 쥐면서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 그가 된 것처럼 권력과 부에 젖어드는 모습, 심지어 자신이 모든 권력을 손에 쥐면서 ‘모든 것은 내 손끝에서 살아나고 죽는다’며 신이 된 양 착각 속에 빠지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을 보고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습까지. 인간이 가진 가장 나약하고 왜소한 모습에서부터 인간의 가장 오만한 모습까지 한 번에 보여준다.

 

회사를 관리하는 M과 대립각을 세우는 J. J역의 주종혁, M역의 고영빈

(나인스토리 제공)

 

자리가 사람을 만들었다. 그 자리에서 감당하지 못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J가 잘못되었을까 아니다.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가 J의 모습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J를 고용한 M은 극중 이런 대사를 남긴다.

 

“진정한 구조는 구조조정 되지 않아요. 사라지는 것은 구조의 구성원뿐이죠.”

 

J는 자신이 계획한 살인이 모두 실행되자, 자신이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다 자신의 마음대로 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회사 조직내의 구조가 자신의 살인을 실행해 줄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J가 죽는다고 해서 이 구조가 변화할까 그렇지 않다. J가 죽는다면, J를 대신할 누군가를 찾게 될 뿐이다.

 

이 사회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일정 지위를 가지게 되면서 자신이 무엇을 이룩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지위를 대체할 만한 사람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인간이 만든 틀 속에서 인간이 소모품 처럼 변화한다. 그렇다면, 이런 삶 속에서 인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연극 컨설턴트를 통해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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