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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인간의 두가지 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다 - 연극 '페스트'

김혜령 기자 승인 2018.05.26 02:03 의견 0

“1954번!”

탕! 탕! 탕!

“1954번 이상 무!”

 

철벽을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하는 연극은 이내 한 남자의 독백으로 연결된다. 남색 정장을 입은 한 남자. 그는 섬에서 오랫동안 의사생활을 해온 리유다. 리유는 곧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다. 높은 장벽을 기준으로 두 개로 나뉜 섬을 배경으로 한 연극 ‘페스트’. 이 작품은 ‘이방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알베르 카뮈의 작품이다.질병 ‘페스트’가 발병하면서 벌어지는 사람들과의 갈등, 병을 이겨내는 과정을 담았다.

 

페스트의 첫 사망자로 등장한 병원 건물의 수위

(국립극단 제공)

 

극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마을에 페스트가 돌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사람들 사이의 뿌리 깊은 불신, 그로 인해 더 커져만 가는 인간의 모습과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역경을 헤쳐 가는 이야기이다.

 

페스트라는 질병이 마을을 뒤덮으면서 마을은 공포에 휩싸인다. 질병의 치료법은 발견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마을을 뒤덮은 공포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리유를 중심으로 시민봉사단이 꾸려진다. 혈청이 발견되면서 마을을 뒤덮은 공포는 사라지지만, 시민 봉사단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리유를 제외한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맞이한다.

 

연극 속에 드러난 전염병으로 인한 참혹한 잔상, 고통을 감내하는 인간들의 모습,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을 모으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배우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질병으로 잃은 이들의 슬픔을 절절하게 표현해냈다.

 

페스트의 유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은 당시를 회상하는 리유

(국립극단 제공)

 

실제 관객석에서는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훌쩍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관객들은 극 속 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자신이 그런 상황이었을 때를 생각하게 된다. 무대에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은 관객 개개인에게 공포와 슬픔을 전달할 수 있도록 극장 가득 감정의 아우라를 내뿜는다.

 

국립극단은 까뮈의 연극에 한국을 상징하는 요소를 더해 관객들과 연극의 심리적 거리를 줄였다.장벽은 6.25의 분단을 상징하는 휴전선을 연상케 한다. 장벽의 견고함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군인들이 숫자를 외치는데, 분단의 세월을 암시하듯 분단된 해의 숫자부터 지금까지를 의미하는 2017의 숫자를 외친다.

 

시민봉사단에서 활동하던 신부 역시 페스트로 사망하게 된다

(국립극단 제공)

 

원작자 까뮈는 <페스트>를 통해 인간이 극한으로 몰렸을 때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치사율이 매우 높은 전염병이 마을에 몰아칠 때 인간들은 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마을에 있는 자신의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서 섬을 탈출하기 위해 애를 쓴다. 마을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온 기자는 마을을 나가기 위해 밀수꾼의 루트를 알아본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무슨 짓이던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모습을 비난할 수는 없다. 살아남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까뮈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마을을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경에 처했을 때 자신이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도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극복하고 타인을 위해서 몸을 내던지는 것 또한 인간군상의 한 면이다. 소설에 이어 연극은 인간을 바라보는 까뮈의 시선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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